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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1화
PAYLUA ORIGINAL · 제1화

사직서가 승인된 시간

퇴사했더니 회사가 던전이 됐습니다 · 3,880자

오프라인 책장
퇴사할 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그동안 수고했어'였다. 하지만 내 마지막 출근 날, 팀장 황규태가 한 말은 조금 달랐다. "차도윤 씨. 인수인계 문서에 장애 대응 전화번호가 빠졌네요. 개인 번호 넣고 가요." 나는 종이컵에 남은 식은 커피를 내려다봤다. 일곱 해 동안 야간 배포를 지켰고, 크리스마스에도 서버를 살렸다. 퇴사하는 날조차 회사가 바란 건 내 미래가 아니라 연락 가능한 휴대전화였다. "번호는 회사 전화번호로 넣었습니다. 다음 담당자는 강민재 씨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혹시를 없애는 게 인수인계죠." 황 팀장이 입을 다문 사이,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서 작은 알림이 떴다. [사직 신청: 승인] [최종 근무 종료: 18:01] 시간은 18시 정각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책상 아래 있던 운동화를 끌어냈다. 빈 상자 안에는 머그잔 하나, 고장 난 키보드의 키캡 세 개, 회사 행사에서 받은 보조 배터리가 들어 있었다. 내 일곱 해의 사무실 재산을 모두 합쳐도 편의점 택배 상자 하나면 충분했다. "선배." 강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사 여덟 달 된 후배였다. "진짜 이제 안 오세요?" "안 오는 게 퇴사야. 가끔 놀러 오면 그건 미련이고." "그럼 장애 나면요?" "문서 보고. 안 되면 지연 없이 보고하고. 절대 혼자 밤새우지 말고."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만 볼 수 있게 접힌 쪽지를 내밀었다. '감사했습니다. 지난주 장애 때 제 실수라고 말하지 않아 주셔서.' 한 줄이었다. 나는 쪽지를 머그잔 아래에 넣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챙길 만한 물건이 드디어 하나 생겼다. 18시 1분. 사내 메신저의 초록 점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업무용 휴대전화에서 회사 관리 프로필이 지워졌다. 출입 카드도 화면에 퇴사자라고 표시됐다. 그리고 천장 조명이 한 번 꺼졌다 켜졌다. "정전인가?" 누군가 물었다. 곧 스피커에서 여성의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전 직원에게 알립니다. 정규 근무가 종료되었습니다. 미처리 업무를 회수합니다.] 모두가 웃었다. 특히 재무팀의 박 대리가 "회수할 거면 야근부터 회수하지" 하고 농담했다. 웃음은 복도 바닥이 세로로 접히면서 끝났다. 정확히는 바닥이 접힌 게 아니었다. 내가 서 있던 열한 층 사무실과 복도 사이에, 조금 전까지 없었던 계단이 생겨났다. 계단은 아래층이 아니라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비상구 표지판은 녹색 불빛을 내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은 18시 1분에서 멈췄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상자를 떨어뜨렸다. 머그잔이 굴러 계단 첫 번째 칸을 때렸다. 딸그락. 머그잔이 계단을 내려간 뒤, 아무것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들 창문에서 떨어져요!" 안전관리팀 문서윤이 외쳤다. "비상구 쪽으로 모여요!" 그녀가 창문을 가리켰다. 유리창 너머, 평소 보이던 강 건너 아파트와 도로는 없었다. 유리 반대편엔 끝없는 복사기들이 서 있었다. 하얀 종이가 기계에서 쏟아져 검은 눈처럼 허공을 돌았다. 경비원이 출입문을 열려 했다. 문 손잡이는 단단했다. 유리에 박힌 반사상에는 복도 대신, 사람 키만 한 사무용 도장이 서 있었다. 도장이 천천히 돌아 우리를 바라봤다. 얼굴은 없었다. 대신 몸통에 한 글자가 찍혀 있었다. '반려.' "저거 뭐야?" 민재가 속삭였다. "몰라. 그래도 악몽이면 너무 회사답다." 도장이 유리를 한 번 내리쳤다. 쾅. 출입문 옆 벽에 빨간 글씨가 떠올랐다. [미처리 업무: 장애 보고서 1건] [책임자: 강민재] [완료 조건: 책임자의 자발적 수령] 민재의 얼굴이 하얘졌다. 지난주에 백업 로그가 사라졌던 사고였다. 공식 장애 보고서는 결재가 끝난 상태였는데, 황 팀장이 책임자의 이름을 임의로 민재로 돌려놓은 일이 떠올랐다. 그때 사무실 전화기가 일제히 울렸다. 수화기를 든 총무팀 직원이 귀에서 기계를 떼고 소리쳤다. 수화기에서는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수십 명의 목소리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담당자 누구십니까?" 평소 업무 시간에는 그 말이 중요했다. 장애가 나면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알아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대답하는 사람이 곧 끌려갈 것 같았다. 강민재는 지난주 일을 떠올린 듯 눈꺼풀이 떨렸다. 그 사고가 나던 밤, 나는 로그를 분석하다 민재가 시스템에 접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오래된 자동 배포 도구였고, 담당자 서명이 빠진 보고서가 팀장 책상에서만 세 번 되돌아왔다. 나는 그때 황 팀장에게 결과를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고집이 세다고 했다. 민재는 내 쪽으로 한 발 다가왔다. "선배, 저 사람들이 정말로 제가 했다고 믿으면 어떡하죠?" "그럼 사실을 보여 주면 돼. 증거가 사라졌다면 다시 찾으면 되고." "서버가 다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서버가 없어도 남는 걸 봐야 해. 네가 언제 어디 있었는지, 옆에 누가 있었는지. 사람의 기억은 편집하기 어렵거든." 복도 밖에서 거대한 도장이 유리 위에 다시 내려앉았다. 나는 빈손을 보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꽉 쥐었다. 건물이 괴물로 변해도 민재의 표정은 내가 알던 그대로였다. 변한 건 우리가 서 있는 장소였다. "민재야, 받지 마." 나는 말했다. "하지만 보고서 안 끝나면 저 문이…" "네가 맡은 업무인지 먼저 확인해. 네 실수 아니잖아." 유리 건너 도장이 다시 몸을 들었다. 그때 내 손목에 푸른 글씨가 번쩍했다. [퇴사자 확인] [차도윤: 조직 외부인] [미처리 업무에 배정할 수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내 눈앞에는 글씨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손을 내밀자 문장이 따라 움직였다. [퇴사자 전용 경로가 열렸습니다.] 바닥에 화살표가 생겼다. 한쪽은 계단 아래의 어둠을, 다른 한쪽은 유리벽 밖으로 난 문을 가리켰다. 그 문에만 익숙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외부로 나가기] 나는 문 쪽으로 갔다. 카드도 없이 손잡이가 풀렸다. 밖에서는 진짜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저 아래 도로를 지나가는 버스가 보였다. 휴대전화에는 18시 02분이 찍혀 있었다. 문턱 하나만 넘으면 나갈 수 있었다. "선배!" 민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뒤를 돌아보니 도장이 이미 유리를 깨고 들어와 있었다. 황 팀장은 사람들 뒤에 숨은 채 휴대전화로 누군가를 촬영했다. 문서윤은 소화기로 도장의 팔을 막고 있었다. 나는 상자를 내려놓았다. 출입구에 회색 글씨가 하나 더 떴다. [주의. 외부인이 자발적으로 재진입할 경우, 퇴사자 보호 예외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여유로워야 경고문도 꼼꼼히 읽는다. 지금 내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서윤 씨! 엎드려요!" 소화기 안전핀을 뽑아 도장의 몸통에 분사했다. 하얀 분말 사이로 빨간 '반려'가 번졌다. 도장은 비틀거리며 민재에게 찍히려 했다. 나는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쓸 만한 기술을 발휘했다. 벽의 화재경보기 유리를 깨뜨린 것이다. 경보음이 울리자 안내 음성이 끊겼다. 도장도 한순간 정지했다. 민재를 잡아당겨 의자 뒤로 밀었다. 문서윤이 내 팔을 붙잡았다. "출구가 있었어요?" "있어요. 그런데 이쪽 사람들은 못 가는 것 같아요." "그럼 길을 만들죠."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일곱 해 동안 회의실에서 들은 수천 개의 '검토하겠습니다'보다 훨씬 더. 정지한 도장의 몸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미처리 업무의 수령자가 변경됩니다.] [강민재 → 차도윤]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아니, 나 퇴사했는데?" [퇴사자 예외 처리 요청: 승인 대기] 천장 위에서, 누군가 박수를 세 번 쳤다. "참 잘 돌아왔군요, 차도윤 씨." 스피커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더 이상 녹음된 여자 목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느린 남자의 목소리였다. "사실 우리는 당신이 퇴사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건물의 모든 문이 동시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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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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