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00화
PAYLUA ORIGINAL · 제200화

200화. 새 출발 직업소개소

악당들의 직업소개소 · 2,480자

오프라인 책장
여섯 달 뒤. 오전 아홉 시 삼 분, 새 출발 직업소개소의 문이 열렸다. “일자리 좀 알아보려고 왔는데요.” 청년은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손에는 구겨진 이력서 한 장이 들려 있었고, 정면을 바라보는 대신 책상 한쪽의 작은 선풍기를 쳐다봤다. 지훈이 의자를 가리키자 청년은 한동안 망설이다 앉았다. “어떤 일을 해 보고 싶으세요?” “그걸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공장에 가라고 하고, 친구는 배송 일 하라는데. 저는 뭐가 잘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예전 같았다면 지훈은 그 청년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숫자를 확인했을 것이다. ‘정밀 조립 91%’, 혹은 ‘요리 96%’ 같은 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그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해 본 일은 어떤 게 있습니까?” “편의점 야간 근무요. 세 달 했어요. 그리고 아버지 일손 도와드린 거.” “그중 좋았던 순간이 있었어요?”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것도 물어보나요?” “네. 싫었던 순간도요.” 지훈은 펜을 들었다. 청년은 한참 생각하다 편의점에서 손님에게 계산 실수를 설명하고 제대로 처리했을 때 조금 뿌듯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일은 집중할 수 있었지만, 계속 같은 자세로 있는 건 힘들었다고 했다. 지훈은 근무 조건이 확인된 몇 곳의 구인 정보를 보여 줬다. 현장 견학을 신청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어느 하나도 ‘당신에게 꼭 맞는 운명’이라고 쓰지 않았다. “뭘 고르는 게 좋습니까?” 청년이 물었다. “제가 대신 정하진 못해요. 다만 비교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일단 견학부터 해 볼래요?” 청년은 공고 두 장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생각해 보고 전화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그가 나가고 난 뒤 지훈은 상담 기록을 작성했다. ‘직업 탐색 중. 견학 정보 제공. 결정은 보류.’ 분명히 끝나지 않은 상담이었다. 그런데 지훈에게는 그 기록이 온전해 보였다. 점심 무렵 예린이 들어왔다. 외부 기관에서 잘못된 자동 보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회신이 추가로 왔다고 했다. 모든 일이 완결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기록과 당사자 응답을 기다리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처리 대기 번호를 사람의 대답으로 바꾸는 기능은 더 이상 기본 경로가 아니었다. “118번 연결도 재점검 보고서에서 최종 해제 확인됐어요.” “고생했어요.” “이번엔 박수 쳐도 되죠?” 지훈이 웃었다. “그건 예린 씨가 결정하세요.” 예린은 혼자 작은 박수를 세 번 쳤다. 오후에는 아래층 빵집에서 전화가 왔다. 강철민이 직접 만든 빵을 새 매장에 납품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박선규는 오늘 첫 판매분이 모두 나갔다고 했다. 철민은 전화기를 빼앗아 말했다. “지훈 씨, 아직 성공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일주일은 더 팔아 봐야죠.” “알겠습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물어볼게요.” “그리고 그날 오시면 빵 하나는 공짜입니다.” “손님마다 같은 가격이라면서요?” “이건 제 선물입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전화를 끊은 뒤 지훈은 오래된 명함을 서랍에서 꺼냈다. 흰 글씨가 흐려진 검은 카드였다. '백도식 소유 직원 117명.' 한때 그 뒤에는 118번 오지훈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그 글씨는 사라져 있었다. 그러나 카드를 버리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직업이 소유물처럼 적혔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필요할 때 확인할 수 있도록, 원본과 경위를 분리해 보관해 두기로 했다. 지훈은 서랍을 닫고 창가로 걸어갔다. 거리에는 셔츠를 입은 직장인도, 배달 가방을 멘 사람도, 정해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어제와 같은 일을 하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일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할 것이다. 누군가는 오늘 어떤 결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수많은 선택 가운데, 그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사실이 이제는 무력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문이 다시 열렸다. 아침에 왔던 청년이었다. 그는 아까보다 조금 편안한 얼굴로 다가왔다. “견학 신청해 볼게요. 그런데 가 봤다가 마음에 안 들면 안 해도 되는 거죠?” “네.” “그럼 신청서 주세요.” 지훈은 빈 신청서를 건넸다. 청년은 천천히 자기 이름을 적었다. 지훈은 그 글씨를 기다렸다. 재촉하지도, 대신 쓰지도 않았다. 창밖에서 아래층 빵집의 종이 울렸다. 처음 강철민이 찾아왔던 날처럼 작고 평범한 소리였다. 지훈은 청년에게 물었다. “원하는 게 바뀌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청년이 펜을 내려놓고 웃었다. “여긴 정말 직업을 소개해 주는 곳이네요.” 지훈은 상담 일지 첫 장에 오래전에 적어 둔 문장을 떠올렸다. '대상자의 선택을 강요하지 말 것.' 그 아래에는 이제 새로운 문장이 있었다. '당신이 내일 어떤 사람이 될지는, 당신이 정합니다.' 새 출발 직업소개소. 그곳에는 오늘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누구의 것도 아닌 누군가 자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 완결 —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200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이전 회차다음 공개 회차 대기 중
READER DISCUSSION

제20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