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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7화
PAYLUA ORIGINAL · 제57화

57화. 열네 번째 빈자리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62자

오프라인 책장
기록에는 열세 명이 있었고, 대기 상태에는 열네 명이 있었다. 대부분의 전산 장애는 숫자가 안 맞는 데서 시작한다. 회계 프로그램이라면 누군가 한 건을 중복 입력했을 수도 있다. 재고 프로그램이라면 밤새 상자 하나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건이 사람이라면, 일단 ‘중복일 것’이라고 넘길 수는 없었다. 강문석은 중앙 서버에 연결된 시험 장치의 화면을 그대로 저장했다. 추출 과정에서 원본 값을 바꾸지 않도록 검증용 해시와 보관 시간을 함께 남겼다. 남기혁 형사는 해당 자료를 어떤 절차로 확보했는지부터 기록했다. 우리는 모두 급했지만 누구도 ‘나중에 설명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대기 중인 주체란 정확히 뭐죠?” 내가 물었다. “퇴근망이 현재 상태를 보존하거나 반환해야 할 대상으로 추적하는 단위입니다. 보통은 해당 사람의 동의 기록과 연결돼 있죠.” “보통은.” “이번에는 한 명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유나가 창가에서 팔짱을 꼈다. “한시우의 어린 기록일 수도 있잖아. 지난번 밖에 나왔다가 돌아간 아이.”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가능성과 사실은 다르다. 아이가 외부 보행을 했다는 기록만으로 누군가 그 아이를 전국망의 담보로 삼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우선 아이에게 묻기 전에 기록이 어디서 넘어왔는지 확인하죠.” 한시우가 자신의 회사가 보존한 전환 이력 일부를 열람했다. 미확인 주체가 추가된 시점은 어제 오후 6시 12분. 바로 아이가 처음 문 밖을 걸었던 시간대였다. 하지만 연결 장치 이름은 0번 보관실이 아니었다. [경로 09 / 구영병원 별관 / 외부 관측 기록] 나는 수첩을 펼쳤다. 경로 09. 전에 누군가 현재의 서버를 통해 1998년 수술실 녹음에 접속했던 통로였다. 그때 출입자 이름이 ‘한정호’로 표시됐다.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혹시 같은 사람일까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강문석이 말했다. “경로를 이용한 주체와 그 경로에 보관된 사람이 같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기록이 사람을 설명하는 대신, 누군가의 흔적을 한 칸에 밀어 넣고 있었다. 우리는 실제 피해자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로 노드별 대기 인원을 비교했다. 부산 세 명, 대전 여섯 명, 서울 네 명. 합계 열세 명. 한 명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주소도 직장도 없었다. 그 사람에게 붙은 것은 숫자뿐이었다. ‘14.’ 유나가 말했다. “숫자만 있으면 찾을 수 없지.” “그래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찾자는 거야. 기계가 숫자라고 부른다고 우리가 같이 숫자라고 부를 이유는 없어.” 수첩에 새로운 줄을 적었다. ‘미확인 한 사람. 이름을 모른다고 사람 수에서 빼지 않는다.’ 나는 남 형사와 함께 1998년 영병원 관련 자료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가 정식 절차로 확보한 서류에는 장비 점검표가 있었다. 필체가 남아 있었지만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책임자 이름 대신 ‘야간 관측자’라고만 적힌 곳도 있었다. “한정호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온 거죠?” 남 형사가 물었다. “경로 09의 접속 로그요. 현재 서버에서 연결한 이름입니다. 원래부터 그 사람 이름인지 모르겠어요.” “그럼 이 점검표와 바로 연결하지 말아야겠군요.” “네. 같은 장소가 나왔다고 사람이 같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점검표의 마지막 항목에는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관측실 근무자 한 명, 근무 종료 확인 미완료. 자동 종료 금지.’ 나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번에 중앙 서버가 보여 준 열네 번째 대기자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 다만 당시 서류의 한 명이 오늘의 미확인 주체라는 증거는 없었다. 아버지는 누군가의 야간 근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 한 명을 기다리다 장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자란 걸까. 서아는 오래된 보고서의 빈칸을 짚었다. “서명이 없다고 동의한 게 아니야. 오히려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십팔 년 동안 무수한 종이와 서버를 옮겨 다닌 기록이 내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삶을 대신 결정하지 말 것. 오후가 되자 각 현장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부산 물류센터에서는 퇴근 등록 버튼 옆에 빈 사람 모양 그림이 생겼다. 대전 연구동에서는 사원번호가 없는 한 칸이 출퇴근 명부 마지막에 추가됐다. 서울의 관측 장치에서도 동일한 빈칸이 생겼다.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가 여러 기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복제된 기억 아닐까요?” 한시우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서아가 답했다. “하지만 복제된 기록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몰라요. 그걸 알기 전에 삭제 대상으로 표시하는 건 위험해요.” 우리는 중앙 프로그램의 삭제 명령을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빈칸에 연결된 현재 상태와 응답 가능한 경로를 읽기 전용으로 확인했다. 외부에서 임의로 메시지를 보내 상태를 바꾸는 방법은 피했다. 우리가 이미 겪은 실패들로 충분했다. 부산에서 수진이 보내 온 사진에는 직원용 출입문 옆에 붙은 손글씨 안내가 있었다. ‘퇴근 기록 이상 시 바로 확인하세요.’ 아래에는 오늘 상담 가능한 담당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진은 직원들이 함께 확인한 내용을 개인정보를 지운 상태로 공유하겠다고 했다. “회사가 싫어하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좋아하지는 않죠. 그래도 말없이 지워지는 것보다 낫잖아요.” “현주 씨는요?” “오늘은 조기 퇴근했어요. 아들이랑 같이 저녁 먹는다고요. 그날 기억이 안 돌아온다고 해서 저녁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평범한 사무실의 조명이 하나둘 켜졌다. 보관국의 장부가 숫자를 늘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장을 보고 아이를 데리러 가고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누군가가 잃은 것을 돕는 일은 그 평범함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수진은 전화 끝에 뜻밖의 질문을 했다. “차도겸 씨도 오늘은 집에 가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맨날 노력만 하지 말고 진짜 가요. 퇴근 얘기하는 사람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웃었다. 그 말을 잊지 않으려고 수첩에 남겼다. 그날 오후 여섯 시, 서울의 익숙한 정지가 시작됐다. 나는 안전한 연결 장소에서 서기관을 만났다. 그는 평소처럼 서류철을 들고 있었지만, 오늘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차도겸 씨. 중앙망에서 제게 문서 하나가 왔습니다.” 서류철 첫 장에는 무심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미기명 주체에 대한 정산 권한 요청.] “누가 요청했죠?” “관리자 서명이 없습니다.” “그럼 거절하면 되잖아요.” “원래라면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전국망 계약이 켜지면 서명이 없는 빈칸을 관리자의 부재 동의로 간주합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사람이 대답 안 하면 동의한 걸로 친다고요? 이제는 관리자가 없어도 관리자가 찬성한 게 됩니까?” 서기관은 침묵했다. “그 규칙이 원본에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외부 부속 규정에서 호출합니다.” 다시 그 부속 규정이었다. 사람의 뜻을 확인하지 않고도 마치 확인한 것처럼 만드는 얇은 종이 한 장. 나는 서기관에게 미기명 주체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했다. 그는 신원을 공개할 권한이 없고 확인 자료도 불완전하다고 답했다. 다만 직접 말을 건넬 수 있는 통로 하나는 남아 있다고 했다. 관리자 명령이 아니라 당사자 확인용 단방향 질문 창이었다. 서기관은 질문 창을 열기 전에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그곳에는 미기명 주체와 대화하면서 확인해야 할 제한 사항이 적혀 있었다. 직접 만날 수 없는 사람의 말은 실제 당사자의 의사인지 검증이 필요하다. 보호 요청은 판단할 수 있는 만큼만 공개해야 한다. 질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건 누가 만들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오래전부터 있던 원본 절차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제가 직무를 맡았을 때도 문서 맨 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용하라는 지시는 거의 받지 못했죠.” “그럼 오늘은 왜 보여 주는 겁니까?” “당신이 거부권을 계속 찾았으니까요. 저도 그걸 절차의 일부로 읽게 됐습니다.” 나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서기관은 규정을 읽는 일을 해 왔지만 규정을 무엇을 위해 읽는지 스스로 묻기 시작한 듯했다. 만약 이 장부에서 누군가를 구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그 변화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질문은 한 문장만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오래 고민했다. ‘너는 누구니?’라고 물으면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정호니?’라고 묻는 것은 이미 답을 정해 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 이곳에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창은 한동안 비어 있었다. 정지 시간이 끝나기 십 분 전,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문을 열지 말아 주세요.’ 나는 허리를 폈다.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사람도 당장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었다. 구조와 추방을 구분해야 했다. 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그 문 밖에는 내가 아닌 사람이 내 이름으로 기다립니다.’ 문틈에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수첩을 꼭 쥐었다. 서기관이 답신을 저장했다. 나는 창의 검은 테두리를 한참 바라봤다. 옛날의 나는 문 하나를 보면 안에 무엇이 있는지부터 궁금해했다. 이제는 그 안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듣고 싶어졌다. “이 답변을 다른 사람이 나중에 지워 버릴 수도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관리자가 수정하려 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럼 원본과 읽은 기록을 따로 남겨 주세요. 제가 읽었다는 사실도요.” 서기관은 잠시 나를 보더니 서류 두 장을 꺼냈다. 하나에는 받은 말을, 다른 하나에는 그 말을 확인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 짧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처음으로 남겨진 분명한 거부였다. 나는 대답을 듣자마자 문 쪽으로 달려가려던 발을 멈췄다. 무턱대고 구하려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그 사람의 의사를 다시 빼앗을 수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았다. 그곳에는 대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고, 우리는 처음으로 그 사람의 말을 기다렸다. 그 사람이 누구든, 이제는 최소한 자신의 의사를 한 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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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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