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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4화
PAYLUA ORIGINAL · 제54화

54화. 대전의 19시 11분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216자

오프라인 책장
부산과 대전 사이에는 기차가 있었다. 하지만 오후 다섯 시 마흔두 분에 정지 장비를 조사한 사람이 저녁 일곱 시 십일 분에 대전 현장에도 도착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물리학과 철도 시간표가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모든 현장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 진서아는 대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남기혁 형사는 대전 관할 경찰에 신고된 장비 이상과 근로기록 변경 정황을 전달했다. 강문석은 서울에서 원본 장치와 운영 로그를 비교하고 있었다. 나는 부산에서 수진과 현주의 진술을 정리한 뒤 서아의 전화를 받았다. “현장은 어떤데?” 내가 물었다. “사업장이 아니라 연구동이야. 야간 교대 인력이 있는 시험 설비 시설. 근태 관리라는 명목으로 들어왔대.” “위험 장비는요?” “가동 중인 설비는 현장 관리자가 중지했어. 퇴근망 연결 단말기는 별도 사무실에 있어. 직원들한테 다가가서 뭘 누르라고 하진 않았고.” 그녀는 평소보다 천천히 말했다. 내가 멀리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도 그녀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사사건건 지시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서아 옆에는 박도윤이라는 시설 기술자가 있었다. 입사 십사 년 차. 그는 허술한 안내문에 화가 난 상태였다. “원래 우리 근태 자료는 매달 두 곳에서 대조합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제 초과 근무가 없어졌어요. 대신 어제 쉬었던 직원에게 열두 시간이 붙었고요.” “그 분이 누구죠?” 서아가 물었다. “저희 조장입니다. 본인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합니다.” 도윤은 평소 기록을 남기는 버릇이 있었다. 설비 이상이 생기면 제일 먼저 종이에 시간과 상황을 적었다. 그 종이들이 오늘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전자 근태 기록이 바뀌어도 기계가 멈춘 시각과 작업자가 실제로 했던 일은 여러 사람의 자료에 남아 있었다. “종이 장부가 이런 데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저도요.” 내가 전화 너머에서 대답했다. “개발자로서는 조금 창피하네요.” 서아가 웃음을 삼켰다. 저녁 일곱 시 직전, 대전 시설 관리자는 교대 인력에게 오늘 단말기 시범 운행 참여가 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알렸다. 이미 잘못 정산된 기록은 별도로 보관했고, 새로운 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 버튼을 누르게 하지 않았다. 그 조치 때문에 매뉴얼상 자동 퇴근 처리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율이 떨어진다고요?” 내가 물었다. “그게 이 시스템의 성과 지표래. 직원이 많이 누를수록 좋은 서비스라고.” “사람이 원해서 누르는 것과 선택지가 없어서 누르는 걸 구분 못 하는 지표네요.” 도윤은 눈치만 보던 다른 직원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각 기록이 잘못 잡혀도 이의를 제기하려면 관리자에게 직접 말해야 했고, 관리자도 화면에서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몰랐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문제를 말하면 ‘시스템이 그렇게 처리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서아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도윤이 원한 것은 신기한 현상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근무 시간과 임금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서아가 현장에 들어갈 때 가져온 것은 특별한 무기가 아니었다. 두 장짜리 권리 확인서와 종이 노트, 여분의 볼펜이었다. 대리 계약에 대한 이의 제기 양식은 서아가 스스로 내용을 읽고 준비한 것이었다. 그녀는 도윤에게 같은 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복사해 드릴게요. 다만 본인이 확인한 사실만 적으셔야 해요.” 도윤은 펜을 받아 들었다. “저 오늘 새벽 한 시까지 설비 점검했어요. 그런데 근태 시스템에는 어제 여섯 시에 집에 갔다고 돼 있습니다. 그 시간에 찍은 설비 사진이 있어요.” “사진의 촬영 시각과 설비 로그가 일치하는지도 확인해 보세요.” “네. 급하다고 날짜를 잘못 적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는 것만 남기는 습관은 도윤과 닮아 있었다. 그때 현장 관리자가 조용히 도윤을 불렀다. 근무기록 문제를 외부 사람에게 말하면 회사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도윤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저도 회사를 싫어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일한 밤을 안 일한 걸로 만드는 게 회사에 도움이 됩니까?” 관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아는 끼어들지 않고 두 사람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뒤 관리자는 오히려 오늘 시험을 중지해야겠다고 말했다. 도윤과 대립하기 전에 다른 직원들의 기록도 확인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화면 너머에서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다. 실수한 시스템을 지키려고 사람의 말을 막으면 일이 더 커진다. 반대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으면 중단해야 할 시점도 조금 더 분명해졌다. 도윤이 작은 웃음을 지었다. “제가 오늘은 회사에서 퇴근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퇴근했다고 거짓 기록되는 일부터 막아 보겠습니다.” 서아가 답했다. 19:10:30. 서아가 영상통화를 켰다. 단말기 화면에는 퇴근 신청 대기자가 여섯 명 나타났다. 모두 퇴근 버튼을 누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화면에는 ‘대리 신청 완료’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대리 신청을 누가 했습니까?” 서아가 안전관리자에게 물었다. “제가 아닙니다. 오늘 근무한 관리자들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계정 사용 이력과 장비 공급사가 남긴 설정 기록을 확보하기로 했다. 19:11:00. 화면이 하얗게 번쩍였다. 영상통화의 소리가 찢어지는 듯 끊겼다. 이곳도 부산처럼 특정 구역만 멈춘 것이다. 시설 안쪽의 동작 표시등은 고정됐지만 복도 끝에 있는 직원 둘은 계속 움직였다. 화면에 비친 서아의 손도 움직였다. “도겸, 내 말 들려?” “들려. 화면은 끊어지는데 목소리는 나와.” “대상자 여섯 명이 있는 곳에서 누가 멈춘 것 같아. 관리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고.” 잠시 뒤 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이름이 지워졌어요.”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디에서요?” “명찰에서요. 분명히 박도윤이라고 적힌 플라스틱 명찰이었는데, 이제는 빈칸이 됐어요.” 서아는 숨을 고른 뒤 확인했다. 다른 사람의 명찰은 정상이라는 사실도, 도윤이 자신을 박도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록했다. 사람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름을 증명하는 매체부터 차례로 바뀌고 있었다. 단말기 위로 검은 종잇조각이 떠올랐다. [책임 귀속 확인: 진서아.] [근무 시간 채권: 박도윤.] [대리 정산 실행 가능.] 서아가 낮게 말했다. “이건 내 계약서 조항을 이용하는 거야. 원본을 보관해 준다는 수탁 기록을 ‘타인의 시간 정산을 승인한다’로 바꿔 읽고 있어.”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가 뗐다. 멀리서 접속해 프로그램을 깨뜨릴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 장치는 사람을 대기 상태로 묶어 두고 있었다. 무엇을 지우면 누구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부터 알아야 했다. “서아, 네가 본인 이의 제기를 해. 수탁 계약에 그 권한이 있다는 건 그때 계약서에서 확인했잖아.” “그게 문제야. 지금 이 장비는 그 이의 제기까지 책임자 승인으로 처리해.” 구태형이 한 단계 더 들어온 것이다. 거부권을 삭제하지는 않았다. 거부권 행사 창 앞에 자신의 승인 절차를 하나 더 끼워 넣었다. 도윤이 물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서아는 화면에서 얼굴을 돌려 그를 보았다. “우선 누구도 대신 동의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본인이 직접 신청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고,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녀는 준비해 온 서류를 책상에 펼쳤다. 자신이 원래 동의했던 계약과 현재 표시된 조항을 한 줄씩 비교한 진술서였다. 거기에는 ‘대리 정산 권한 없음’이라는 문장이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남 형사가 확보한 전자 문서도 같은 사실을 지지했다. 서아는 입회자들 앞에서 직접 서명했다. 도윤도 자기 근무 시간의 사용을 누구에게도 맡긴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단말기가 잠시 떨렸다. [승인 충돌 발생.] [자동 정산 보류: 00:06:00.] 여섯 분. 그동안 대기 대상자를 안전하게 분리해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대리 서명자가 현장에 없습니다.] [원격 정산 보증인 호출.]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차도겸 씨.” 구태형의 목소리였다. “부산에서 거부권을 찾으셨더군요. 축하합니다. 하지만 대전은 다른 문제예요.” 나는 녹음 여부를 확인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통화 사실을 알렸다. “사람의 이름을 빌리는 일, 그만두시죠.” 그가 웃었다. “이름이 아니라 빈자리를 빌리는 겁니다. 현대의 직장은 모두 바쁘잖아요. 누군가는 퇴근을 못 하니까, 다른 누군가가 대신 퇴근하는 거죠.” “그 말을 노동자들 앞에서 해 보시죠.” “아직은 안 됩니다. 시범 운행이니까.” 전화를 끊기 직전, 그가 한 가지를 덧붙였다. “오늘 밤, 두 도시를 잇는 길이 열립니다. 누가 누구의 하루를 대신 살았는지 보게 될 거예요.” 통화가 끝난 뒤 서아는 도윤과 함께 잠시 복도에 앉았다. 시험 장치 안에 들어간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도윤이 물었다. “저렇게 사람을 멈추는 기계가 있으면 모두 퇴근 안 하고 일할 수도 있겠네요.” “아마 누군가는 그렇게 팔려고 할 거예요.” 서아가 말했다. “저희는 반대예요. 멈춘 동안 일한 것처럼 계산되면, 실제로 일한 시간도 없어질 테니까.” 그는 낡은 휴대전화에서 가족사진을 보여 줬다. 어린 딸이 운동회에서 상을 받은 사진이었다. 그는 야간 점검 때문에 시상식에 가지 못했지만, 딸이 친구에게 부탁해 사진을 보내 줬다고 했다. “저 날의 시간을 돌려준다고 하면 솔깃하겠죠. 그런데 대신 다른 사람이 자기 기억을 잃는다면 그건 돌려받는 게 아니잖아요.” 서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에게는 거창한 초능력보다 쉬는 날 딸과 시간을 보낼 권리가 더 중요했다. 오늘 그가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도 그 안에 있었다. 대전 단말기 화면에서 굵은 선 하나가 부산 방향으로 뻗었다. 서아는 도윤에게 오늘 기록된 자신의 근무 시각을 다시 한번 읽어 달라고 했다. 도윤은 느리지만 또박또박 대답했다. 화면에 떠 있던 잘못된 이름보다,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실이 먼저였다. “그렇게 하면 제 이름이 돌아옵니까?” 그가 물었다. “지금 당장 장담할 순 없어요. 그래도 당신이 직접 말한 것을 누군가 임의로 지우지 못하게 남길 수 있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밤이었다. 두 지역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보관국의 장부에서는, 방금 같은 줄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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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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