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77화
PAYLUA ORIGINAL · 제177화

177화. 첫 번째 질문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239자

오프라인 책장
1998년 6월 11일 오후 6시 11분. 그 날짜는 우리가 찾아낸 거의 모든 미완성 기록의 밑바닥에 있었다. 아버지의 귀가 확인서, 진서아의 답하지 않은 질문, 한정호 명의 승인키, 제3 귀환문 개방 기록. 그리고 이제 대리 응답 권한의 최초 발급 시각까지. “대체 이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문석이 중얼거렸다. “사람이 다쳤고, 문이 닫혔고, 누군가 구하려고 했어.” 서아가 답했다. “그 이상은 기록을 구분해야 해.” 영병원 자료실에는 1998년 사고의 수기 일지가 별도로 남아 있었다. 종이 대부분이 훼손돼 원문을 모두 읽을 수는 없었다. 남 형사는 필요한 페이지를 정식으로 확보했고, 이채원은 장치의 최초 설계도를 대조했다. 원래 첫 번째 질문은 단순했다. ‘내부 응답이 없을 때, 외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지는 두 개였다. 산소와 구조 통신을 유지하며 기다리기, 또는 안전이 확인된 물리적 구조 절차를 진행하기. 그 어느 쪽도 사람의 기억을 가져오거나 다른 사람을 출근시키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2011년 파일에는 답이 세 개예요.” 채원이 말했다. 그녀는 새 버전의 화면을 띄웠다. ‘내부 응답이 없을 때, 가족 또는 보호자의 시간으로 대리 응답한다.’ “이걸 누가 추가했어?” “확실하지 않습니다. 개정 이력에 한정호와 구태형의 계정이 나란히 기록돼 있어요. 어떤 사람의 실제 지시인지 원본 로그가 필요해요.” “그 원본이 하부 교환기에 있고요.” 내가 말했다. 서아는 두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질문이 바뀐 거야. 원래는 ‘어떻게 구조할까’였는데 나중에는 ‘누구의 시간을 가져올까’가 됐어.” 그 말이 정확했다. 질문을 바꿔 놓고 답을 강요했다. 누가 대답하더라도 잘못된 결과에 이르게 만드는 장치였다. 오후에 우리는 구태형을 다시 만났다. 그는 보호 시설에서 제공한 자료로 개정 이력을 확인했다. 남 형사가 공식적인 면담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그의 말이 어디까지 검증 가능한지 수첩에 따로 표시했다. “대리 응답 기능이 처음부터 사람의 기억을 가져가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구태형이 말했다. “그럼 어디서 바뀌었습니까?” “2011년 갱신 작업 때 보호자를 일종의 백업 전원으로 사용하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기억을 전원처럼 쓰는 제안이요?” 유나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는 그녀를 피하지 못했다. “제가 승인한 건 그중 일부입니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최초 서식이 바뀐 시점에는 제가 현장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현장에 누가 있었죠?” 그는 낮게 말했다. “아래층에 남도윤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서명을 받아 오라고 지시한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남 형사가 물었다. 구태형은 대답 대신 오래된 기기 사진을 내밀었다. 작은 수동 교환기 옆에 금속 카드가 꽂혀 있었다. 카드에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운영 주체: 근무연속성 위원회] 우리가 알고 있는 보관국과는 다른 이름이었다. 기관인지 임시 조직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위원회의 실체가 불명확하다고 해서 그 명칭을 범인의 이름처럼 쓸 수는 없었다. “저 카드가 현장에 있었습니까?” 형사가 물었다. “예. 교환기에 꽂혀 있는 동안 모든 대리 응답이 외부 정산망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영병원으로 돌아왔다. 자료와 사진을 대조하자 하부 교환기 옆에 정확히 같은 카드 슬롯이 있었다. 먼지가 쌓인 표면에는 카드가 최근 빠졌다 다시 들어간 흔적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이채원은 날짜를 단정하지 않았다. “분리하면 안 됩니다.” 그녀가 말했다. “현재 안쪽 통신도 여길 지나가거든요.” “그럼 읽을 수는 있나요?” “복제한 장치에서 신호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원본 동작은 보존해야 해요.” 나는 복사된 카드 사진에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근무연속성 위원회’라는 글자 아래에 아주 작은 주의 문구가 있었다. ‘사용 중 응답을 승인으로 바꾸지 말 것.’ 나는 확대 화면을 서아에게 보여 줬다. “처음 만든 사람은 대리 서명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걸 알았나 봐요.” “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막는 건 다르지.” 문석이 과거 소스 버전과 화면 출력 로그를 비교했다. 경고 문구가 사라진 건 2011년 전체 시스템 개편보다도 이른 시점이었다. 기록 파일 이름은 ‘현장 단순화’였다. 신호를 한 가지로 합치면 직원들이 일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삭제됐다고 되어 있었다. “편하게 만들면 위험해지는 걸 왜 몰랐을까?” 유나가 말했다. “그때는 사람이 안쪽에 오래 남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수 있어요.” 채원이 대답했다. “그런데 그 뒤에도 문제를 고치지 않았으니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나는 늘 회사에서 쓰던 보고서를 떠올렸다. 오류가 발생하면 영향 범위와 대응 방법을 먼저 쓰고, 마지막에 재발 방지 대책을 적었다. 하지만 재발 방지라는 문장이 누구의 선택을 지우는 기능을 은근히 숨길 수도 있었다. 문서 제목이 안전이라고 해서 그 안에 안전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아는 우리가 찾아낸 원본 질문과 개정된 질문을 나란히 적었다. ‘기다릴 것인가, 구조할 것인가.’ ‘누구의 시간을 대신 사용할 것인가.’ 다른 것은 아주 작은 문장 하나였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수천 건의 기록을 낳았다. 나는 두 문장 사이에 긴 선을 그었다. 어디서부터 사람이 아닌 장치가 결정을 대신하게 됐는지 보여 주려고. 남 형사는 선을 보고 낮게 말했다. “이건 특정 개인 한 명이 벌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내가 답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구태형 혼자 욕하고 끝내면 안 돼요.” 유나가 말했다. “그래도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책임은 져야지.” “당연하죠.” 우리가 동의한 것은 두 가지였다. 개인의 선택에는 책임을 묻되,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질문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이름으로 들어와 똑같은 장치를 작동시킬 테니까. 저녁 여섯 시가 다가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문 쪽을 피했다. 시간 정지를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착각은 오래전에 버렸다. 남 형사는 조용히 현장 책임자를 불러 통제선을 정비했다. 바로 그때 카드 슬롯의 점검 표시등이 켜졌다. [대리 응답 등록원: 확인] 두 번째 줄이 나타났다. [발급 주체: 개인 아님] “개인이 아니라고?” 문석이 되물었다. 세 번째 줄이 떴다. [1998년 원본 응답 보존 중] 누군가의 이름을 찾아온 우리는 처음으로 이름 없는 제도를 마주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77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7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