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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52화
PAYLUA ORIGINAL · 제152화

152화. 받지 않은 전화의 주인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915자

오프라인 책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때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번호를 눌렀다. 시스템이 숫자 하나라도 대신 채워 줄까 봐 손가락을 확인하고 싶었다. “도겸아? 저녁 먹는다더니.” 평범한 목소리였다.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엄마,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오면 받지 마세요. 제 이름이 떠도요.” “네 이름으로 전화를 왜 해?” “그게 설명하기가 좀 복잡해요.” “엄마는 복잡한 얘기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고?” “아니요. 제가 아직 제대로 모르는 거예요.” 말하고 보니 그게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다. 어머니는 잠시 침묵했다가 가스불부터 끄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지 않은 채 냄비를 옮기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비밀이든 사람이 주방에서 넘어지지 않는 일이 먼저였다. 아래층에서 유나와 서아가 올라왔다. 남 형사는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서아는 문턱에서 신발을 벗으며 책상 위의 종이를 보았다. “바뀐 단어까지 적었네.” “개발자 직업병.” “드디어 쓸모가 있네.” “너무 늦게 인정해 주시는 것 아닙니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어머니 번호가 들어간 회신 목록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남 형사가 도착했을 때 작업실은 경찰서 조사실처럼 변해 있었다. 종이에는 내가 적은 시각이 빼곡했고, 유나는 통신선을 손으로 따라가며 배선도를 그렸다. 서아는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을 날짜와 함께 기록했다. “제가 신고부터 하겠습니다.” 남 형사가 말했다. “형사님이 직접 담당하셔도 돼요?” “제 가족과 연결된 부분은 다른 담당자에게 넘길 겁니다. 저는 확인된 자료를 전달하죠.” 그는 자기 휴대전화에도 이상한 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발신자는 '남도윤'. 메시지에는 열 살 때 형과 놀이터에서 숨바꼭질하던 장소가 적혀 있었다. “그거 정말 형만 아는 기억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아뇨. 제가 여러 번 진술한 내용이에요.” 그 사실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남기혁이 소중하게 지닌 기억은 수사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 그 기록을 읽을 수 있다면 형의 목소리를 빌려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형사님 괜찮으세요?” 그는 짧게 웃었다. “안 괜찮죠. 그래도 메시지 하나 때문에 형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나는 그가 얼마나 어렵게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기다린 시간이 길수록 가짜 소식도 진짜처럼 들린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상황의 확인된 부분만 설명했다. 누군가 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해 자동 전화를 보내려 한다는 점, 응답을 강요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점, 그리고 신원을 확인하기 전에는 통화 내용을 믿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초능력이나 보관국 이야기를 전부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위험을 피하는 데 필요한 정보부터 전했다. “그럼 직접 전화 오면?” 어머니가 물었다. “일단 끊고 제가 알려 드린 번호로 다시 전화해 주세요.” “네가 진짜 너인지 어떻게 아는데?” 잠깐 말문이 막혔다. 정답처럼 보이는 비밀 질문을 하나 정해 주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내가 이미 한 말도, 잃어버린 기억도 훔쳐 쓸 수 있었다. “오늘은 서아 누나 번호랑 같이 확인해 주세요. 이상하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고요.” “누나?” 서아가 내 어깨를 세게 쳤다. “평생 놀림받고 싶어?” “상황을 부드럽게 하려는 고도의—” “전화 안 끊는다.” 어머니가 웃었다. 기적보다 평범한 웃음이 훨씬 크게 들릴 때가 있다. 그때 어머니가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전화기, 옛날에도 울렸어.” 나는 수신기를 바라봤다. “어릴 때요?” “네 아버지가 영병원에서 일하던 때. 밤마다 집 전화가 울렸는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날이 있었지. 한번은 네 아버지가 수화기를 들고 이런 말을 했어. '어른이 대신 받을 수는 있지만, 어른이 대신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서아의 손이 멈췄다. 그 문장은 1998년 초기 장치 설명서의 한 귀퉁이에 있던 규칙과 닮았다. 다만 나는 어머니의 기억이 곧 문서의 진짜 출처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당시 전화 요금 청구서와 수화기 연결 기록을 찾아야 했다. “그다음에는요?”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있었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문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오기 싫다고 했대. 네 아버지는 그 말을 무섭게 생각했어. 우리가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이,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위협일 수 있다고.” 서아가 조용히 물었다. “아버님은 그 사람이 누군지 말씀하셨어요?” “이름을 말하진 않았어. 대신 두 가지를 적어 두셨지. 누가 물었고, 누가 대답했는지. 둘은 절대로 합치면 안 된다고.” 나는 아버지의 공책을 떠올렸다. 집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른다. 통화가 끝난 뒤 강문석과 원격으로 연결했다. 그는 수신기의 상태 종이에 아주 작은 인쇄 번호를 발견했다. '발신 합성기 C-07'. “07번 계정이야?” 내가 물었다. “계정과 장비 번호는 구분해야 해. 이번 건은 장비 모듈 명칭일 수 있어. 다만 2011년 기록이관 장비와 같은 계열이네.” 그는 보관국 장부에서 C-07의 교체 이력을 찾았다. 2011년에는 문서 업체가, 2026년에는 외부 통신 업체가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실제 장비 소유자는 그 사이 세 번 바뀌었다. “장비가 누구한테 있느냐보다, 지금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가 급해요.” 유나가 말했다. 강문석이 새 지도를 띄웠다. 같은 합성기에서 보낸 회신 대기 목록이 서울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추적하던 171건 중 열세 건이 방금 활성화됐다. 각 수신자 옆에는 같은 짧은 문구가 있었다. '가족의 목소리로 연락 예정'.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그날 밤 다시 통화했을 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오늘은 오래된 전화기를 버리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사용한 전화기가 아직 창고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건 이제 고물일 텐데요.” “고물이니까 남아 있는 거지. 좋은 건 이사할 때 팔아 버렸잖아.” 서아가 전화 너머로 웃었다. 다음 날 어머니가 창고 문을 열어 주었을 때 우리는 먼지 쌓인 갈색 전화기와 종이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오래된 전화 요금 명세서가 날짜순으로 묶여 있었다. 어머니는 굳이 버리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가끔 사람은 어떤 물건을 왜 남겼는지 모르면서도 그것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마음만 갖고 산다. 명세서의 어떤 달에는 같은 지역번호로 짧은 통화가 수십 건 있었다. 통화 시간은 대부분 열한 초 또는 스물두 초였다. 이상하게 정돈된 숫자였다. “열한 분이 아니라 열한 초네.” 서아가 말했다. “자동 응답을 검사한 것 같아.” 우리는 번호를 적었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교환국을 거쳐 영병원 별관으로 연결되는 회선이었다. 1998년의 전화기에는 발신자 표시 기능도, 녹음 파일을 편집하는 기능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통화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비교적 단순한 자료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장 길었던 통화 내역 하나를 가리켰다. 1998년 6월 11일 오후 여섯 시 십일 분 시작. 기록된 통화 시간은 0초였다. “이상하네요.” 내가 말했다. “그날은 전화가 울린 게 아니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초인종이 울렸지.” 그녀는 현관문까지 가서 문고리를 잡았다. 똑같은 건물은 아니지만 손의 움직임은 오래전 집에 돌아간 사람 같았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더라. 정수 씨는 그때 집에 오지도 않았고.” “혹시 그날 아버지가 다른 장비로 신호를 보낸 걸까요?” 서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그땐 그냥 고장인 줄 알았어.” 어머니는 번호 아래 작은 글씨를 썼다. '초인종만 울림. 사람 없음.' 우리는 그 문장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촬영했다. 기억의 증거는 증언자의 손을 지나며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요금 명세서의 날짜와 어머니가 기억하는 날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아버지 이름으로 온 한 통의 편지가 미끼였다. 목표는 우리 가족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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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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