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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화
PAYLUA ORIGINAL · 제1화

1화. 퇴근 버튼을 누른 순간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194자

오프라인 책장
우리 회사의 퇴근 버튼은 누를 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준다. 그것은 급여가 많아서도, 상사가 자비로워서도 아니다. 일단 누르면 오늘 하루의 불행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 오후 5시 59분. 나는 모니터 두 대 사이로 얼굴을 내민 팀장에게 말했다. “배포는 끝났고, 로그도 정상입니다. 저 오늘은 정시에 퇴근하겠습니다.” “도겸 씨. 마지막으로 이것만 확인해 줄 수 있어?” 마지막이라는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팀장의 마지막은 보통 마지막에서 세 번째였다. “내일 아침에 확인하겠습니다.” “아니, 딱 일 분이면 돼.” 팀장이 내 화면에 나타난 오류 메시지를 가리켰다. 엉뚱하게도 사용자 생년월일을 저장하면 시스템 시간이 1970년으로 돌아가는 문제였다. “서버 시계가 정신을 못 차리는군요.” “너도 정신 좀 차려. 고객사에서 전화 온다.” 나는 파일 한 줄을 수정하고 엔터를 쳤다. 마지막 테스트가 통과한 시각은 오후 5시 59분 58초였다. “끝났습니다.” 59초. 나는 사내 메신저 상태를 ‘퇴근’으로 바꾸는 버튼을 눌렀다. 6시. 세상이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회사 전기가 나간 줄 알았다. 형광등은 켜져 있었지만 환풍기 소리가 사라졌다. 복도에서 떠들던 직원들의 목소리가 한 음절에서 끊겼다. 팀장이 입을 벌린 채 내 책상 앞에 서 있었다. “팀장님?”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화나셨으면 뭐라도 말씀을……” 나는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팀장의 넥타이가 공중에 떠 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휘날리는 중이었는데, 휘날림의 한가운데에서 잘린 듯 고정돼 있었다. 잠깐. 넥타이는 원래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종이컵이었다. 팀장 손끝에서 넘어간 커피가 컵 밖으로 솟구쳤는데, 갈색 물방울 하나하나가 공중에 박혀 있었다. 나는 검지로 물방울을 찔렀다. 차가웠다. 그리고 움직였다. 손가락에 닿은 커피 방울이 작게 터져 책상 위로 흩어졌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뭐야.” 나는 복도로 뛰어나갔다. 누군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채 서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리는 중이었다. 계단의 비상등도 깜박이던 밝기 그대로 고정돼 있었다. 휴대전화를 켰다. 화면은 오후 6시 00분 00초에서 바뀌지 않았다. 터치도 먹히지 않았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내 심장만.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기묘한 실험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볼펜을 집어 던졌다. 볼펜은 평소와 똑같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고무공도 튀었다. 그런데 팀장이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는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바뀌지 않았다. 이미 켜진 화면의 밝기만 유지됐다. 팀장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딱딱했다. 힘주어 밀어도 그의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셔츠에 묻어 있던 먼지 한 점은 떨어졌다. “인간은 고정하고 먼지는 허용. 기준이 대체 뭡니까?” 나는 그 말을 수십 번 되풀이했다. 말을 하는 동안 내 목소리는 내가 들었다. 내가 만든 소리는 공기를 움직였다. 숨도 쉴 수 있었고, 손에 묻은 커피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하늘의 비행기가 정지해 있다면 그 안의 공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세상의 물리 법칙을 고치려면 설명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창가에서 묘한 것을 발견했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 뒤로 다른 모습이 겹쳐 있었다.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 정확히 고개를 돌리면 아무도 없었다. 다시 유리를 보면 이번에는 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라고 결정했다. 중요한 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결정했다는 사실이었다. 당황한 사람은 사소한 질서라도 필요하니까. 문득 서랍 안의 사내 출입증을 챙겼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세상이 멈췄다면 출입증은 쓸모없었지만, 그것을 주머니에 넣자 조금 안심이 됐다. 내 이름이 인쇄된 물건이었다. 적어도 아직 차도겸이라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증명서. 유리창 밖 정지한 하늘에는 흰 비행기가 조그맣게 떠 있었다. 탑승객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창밖에서 다른 비행기가 마주 오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들에겐 지금 이 순간이 단 한 번이지만, 나는 그 사이에 수십 분을 끼워 넣을 수 있었다. 갑자기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합의 위에 흐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고, 열차가 도착하고,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모두가 대략 같은 시간을 산다는 믿음이 없다면 도시 전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불안할 때마다 개발 로그를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화이트보드에 ‘18:00:00 정지 확인’이라고 크게 적었다. 화이트보드의 글씨가 현실로 복귀한 뒤에도 남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마커는 잘 써졌다. 내가 화면 밖에서도 여전히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기뻤다. 그때 나는 회사가 아닌 다른 장소를 확인하기로 했다. 건물 밖으로 나갔다. 강남의 저녁은 늘 조급한데, 지금은 조급함마저 멈춰 있었다. 횡단보도 위에서 택시가 정지했고, 건널목의 사람들은 굳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노란 은행잎은 꼭 누군가 투명한 유리판에 끼워 둔 것 같았다. 버스 한 대가 교차로 한복판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자전거를 탄 아이가 쓰러지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이도 자전거도 정지해 있는데, 아이의 앞바퀴만 버스 바퀴에 거의 닿아 있었다. 시간이 다시 흐르면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야, 잠깐만.” 세상에 정지를 부탁하는 바보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당겼다. 움직이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잡는 감각이 아니라 거대한 건물의 벽을 잡는 것 같았다. 힘을 줘도 옷의 주름 하나 바뀌지 않았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대신 자전거를 잡았다. 쇠 프레임은 움직였다. 앞바퀴를 비틀고 핸들을 돌려 아이의 몸에서 떨어뜨렸다. 아이의 운동화 아래에는 미끄러지던 페달이 정지해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떼어 내고 넘어질 방향에 놓인 볼라드를 옆으로 밀었다. 버스가 움직이는 즉시 아이가 덜 다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헉헉거리며 서 있는데, 어디선가 째깍 소리가 났다. 내 왼쪽 손목. 평소에는 차지 않는 낡은 아날로그 시계가 매여 있었다. “이건 또 뭐야?” 금속 줄에 흠집이 많았다. 시계판 숫자는 모두 지워져 있었고, 작은 원형 창 하나에 ‘59:42’가 표시돼 있었다. 시곗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숫자가 일 초씩 줄어들었다. 59:41. 59:40. 나는 시계줄을 풀려고 했지만 잠금장치가 보이지 않았다. 손목 피부에 딱 맞게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처음 십 분 동안 나는 멈춘 세상을 탐험했다. 경찰에게 신고하려고 시도했고, 구급차 문을 열어 보기도 했고, 편의점의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사물은 내 손에 반응했다. 전기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냉장고도 안쪽에서는 차가운 기운만 남아 있었다. 두 번째 십 분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이걸로 회사 야근을 안 해도 되는 걸까? 세 번째 십 분에는 그 생각을 반성했다. 내게 한 시간의 자유가 생겼는데 기껏 떠올린 게 야근이라니. 회사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세뇌였다. 나는 건물 벽에 기대어 앉아 어머니에게 전화하려다가 멈췄다. 휴대전화는 먹통이었다. 어머니는 오늘 저녁에 전화하라고 하셨다. 분명히. 무슨 일 때문이었더라. 숫자가 00:20이 됐을 때 도시가 낯설어졌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이 불쑥 무섭게 느껴졌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듯했다. 00:05. 나는 다시 교차로로 달려갔다. 아이는 여전히 그 자세로 멈춰 있었다. 뒤에 세워 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도록 난간에 기대 놓았다. 00:01. 나는 숨을 참았다. 숫자가 00:00을 가리키자 거리가 폭발하듯 움직였다. 차가 경적을 울리고, 사람이 소리쳤다. 쓰러지던 아이는 볼라드 대신 도로 위로 굴렀고 버스는 급정거했다. 아이는 울었지만 스스로 일어났다. 누군가 구급차를 불렀다. 버스 기사는 놀란 얼굴로 창밖을 내다봤다. 휴대전화 시각은 6시 00분 01초였다. 한 시간을 보냈는데 바깥세상에는 일 초가 흘렀다. 거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곧바로 일어서지 못했다. 사고가 날 뻔한 아이에게 사람들이 몰렸다. 한 여성이 아이의 팔꿈치를 살폈고, 배달 기사는 자신의 헬멧을 벗어 씌워 주려 했다. 누군가 자전거가 왜 저쪽 난간에 기대어 있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나는 갑자기 그 아이가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게 내가 한 일 때문인지, 원래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 궁금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세상을 바꾼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한 시간 동안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이상하게도 어느 쪽이든 괜찮았다. 아이가 살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반대편 유리창에는 다른 장면이 비쳤다. 교통안전 카메라 화면을 확인하던 경찰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면의 시간 표시는 6시 00분에서 01초로 이동했을 뿐인데, 자전거가 대여섯 미터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 경찰관은 이상한 오류라며 화면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나는 주머니 속 출입증을 만졌다. 누군가 증거를 찾으려 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세상을 멈추었다고 하면 웃음거리가 되거나 실험실로 끌려갈 것이었다. 이럴 때엔 침착하게 증거부터 보관하는 게 개발자의 습관이었다. 나는 수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에는 모든 것을 컴퓨터에 적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화면 하나가 세상을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털썩 앉았다. 손목의 낡은 시계는 사라져 있었다. 피부에는 시계줄 자국만 남았다. 살았다. 아이가 살아서 다행이었다. 그것만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엄마’라고 떴다. “어, 엄마.”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해야 할 목소리가 들렸다. “도겸아. 바쁘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니?” 나는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전화기에는 분명 ‘엄마’라고 적혀 있었다. 그 여성이 나를 낳았고, 나를 키웠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을 들어도 낯선 사람의 목소리였다. “도겸아?” 그 순간 휴대전화 화면에 알림 하나가 떴다. 보낸 사람도, 앱 이름도 없었다. [첫 번째 시간 사용이 확인되었습니다. 기억 하나가 징수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문장이 이어졌다. [내일도 오후 6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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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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