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 철공소 터에는 새로 세운 물류창고가 들어서 있었다.
새벽 네 시, 화물차 두 대가 출입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밤 근무를 마친 사람들이 편의점 앞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셨다. 정우빈은 그들의 얼굴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일하고, 누군가는 퇴근하고, 누군가는 집에 돌아갔다. 금고가 ‘잃어버린 하루’라고 부르던 것도 결국 이런 하루 중 하나였을 것이다.
현정은 현재 부지 관리인의 허가를 받아 옛 철공소 건물 터의 바깥쪽 안전 구역에 머물렀다. 안쪽은 출입하지 않았다. 소라와 강재, 우빈이 함께 오래된 벽돌 하나를 바라봤다. 벽돌에는 1998년 당시 대피 출구 표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정해원이 남긴 최초 보호 요청은 여기서 발신됐죠.” 강재가 말했다.
“그리고 수령 확인은 다른 곳에서 조작됐고요.” 소라가 답했다.
우빈은 휴대전화를 꺼내 확보한 기록의 시각을 확인했다. 그들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1998년 두 아이를 보호하라는 요청이 있었다. 5일 새벽 한 아이가 쉼터로 이동했다는 기록이 남았다. 2010년에 기존 보호 안내서에 채무 인수 조항이 덧붙었다. 그러나 B의 현재 신원을 공적으로 확정할 증거는 아직 없었다.
“이 정도로 막을 수 있을까요?”
현정은 단정하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다만 잘못된 문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그때 출입구 앞 바닥에 검은 네모가 나타났다. 작고 납작한 금고였다. 뚜껑에는 ‘원본 00’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 위에 종이 시계 하나가 떠올랐다.
[최종 인도 심사]
[대상자 B / 귀가 확인 불가]
[대리 수령 후보: 강나래, 박현정, 정우빈]
[남은 시간 00:30:00]
검은 양복의 남자가 창고 벽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양복 안주머니에 어린아이용 손수건이 꽂혀 있었다.
“한 사람만 서명하십시오. 그러면 대상자 B의 기록은 정리됩니다.”
우빈은 말했다.
“정리된다는 게 뭐죠? 그 사람이 어디서 살았는지, 누구와 지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없어지는 겁니까?”
“책임자는 한 명이면 됩니다.”
“우리는 책임자를 찾는 게 아니라, 그때의 보호가 어떻게 기록됐는지 확인하고 있어요.”
남자가 손짓하자 우빈의 발밑에서 종이들이 솟아올랐다. 수십 개의 봉투가 서로 뒤엉켜 사람의 다리 모양을 만들었다. 봉투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열두 살 나래의 이름, 성인 나래의 이름, 아직 공개되지 않은 민호의 현재 신원을 추정하는 빈칸, 이정민의 이름, 오해경의 이름.
괴물이 매번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서류의 글자가 뒤바뀌었다. 한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의 빚으로 전환됐다.
소라는 가방에서 1998년 최초 보호 요청의 사본을 꺼냈다.
“이 문장은 돈을 빌렸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강나래 외 1인을 무사히 인도할 것.’ 정해원 씨의 증언과도 일치해요.”
현정이 새벽쉼터 운영 수첩 사본을 펼쳤다.
“여기에는 5시 38분에 아이 한 사람이 도착했다고 쓰여 있어요. 인계처가 공란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오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강재는 2010년 추가 조항의 문구를 읽었다.
“이건 사고가 난 뒤 십이 년이 지나 덧붙여진 문서예요. 원래의 보호 요청을 빚으로 바꿀 수 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의 말이 각각 다른 종이에 새겨졌다. 괴물의 몸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졌다. 검은 양복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사자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빈은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도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증언을 강요하는 순간 금고의 논리를 반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말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요.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빚이 되지는 않습니다.”
남자의 손끝에서 검은 실이 뻗어 나왔다. 실은 우빈의 목에 감기려다가 허공에서 멈췄다.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강민호로 추정되는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 이름과 주소는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대신 다음 문장을 제가 직접 녹음해 보낼 수는 있습니다. 제가 겪은 부분만 말하겠습니다.’
곧 음성 파일 하나가 도착했다. 소라는 파일이 오가는 과정과 사용에 대한 동의가 있는지 확인했다. 발신자는 해당 파일을 이 사건의 이의 신청 자료로만 사용하도록 허락했고, 신원 확정의 근거로 사용하지 말라고 명시했다.
우빈은 그 동의 내용을 먼저 읽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나는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구조된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날짜와 장소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나는 가족의 이름을 빚으로 바꾸는 데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내 현재 삶을 대신 결정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할 때 내가 가진 기록을 더 제공하겠습니다.’
짧은 목소리였다. 열두 살 나래가 기억하던 어린 동생의 목소리와는 당연히 달랐다. 우빈은 그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자란다. 누구의 머릿속에서도 영원히 아이인 채로 남을 의무는 없다.
금고 위 시계가 두 번 떨렸다.
[대상자 B / 대리 수령 동의: 확인 안 됨]
[1998년 보호 요청을 채무로 전환할 근거: 불충분]
검은 양복 남자는 필사적으로 종이들을 모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해경의 모습을 한 그림자가 나타나 우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 대신 마무리해 줘.’
우빈은 울컥했지만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이 그분인지 저는 몰라요. 하지만 그분이 남긴 기록은 검토하고 있어요. 아무도 대신 마무리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괴물의 손에서 급여봉투가 쏟아졌다. 바람에 날린 봉투들이 도로 위로 흩어지지 않도록 현정이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었다. 화물차 기사 한 명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그가 본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빈 출입문뿐이었다.
남자가 마지막 봉인을 깨뜨리려는 순간 우빈은 말했다.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야만 닫히는 장부라면, 그 장부가 틀린 겁니다.”
금고 뚜껑이 비명을 질렀다. 종이 시계의 초침이 멈췄다. 하지만 화면에는 승리 선언 대신 또 다른 문장이 떴다.
[최종 심사 유예: 00:05:00]
[보존자 진술 최종 확인 필요]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보호 기록을 지켜 온 이유를 밝혀야 했다. 우빈의 시선이 오래된 벽돌로 향했다.
그리고 벽돌 틈에서 여태껏 열리지 않던 작은 철판 하나가 천천히 들렸다.
제14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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