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75화
PAYLUA ORIGINAL · 제75화

75화. 대여된 미래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3,267자

오프라인 책장
정태겸을 다시 만난 곳은 익일금융 본사의 대회의실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홍보 자료 대신 두꺼운 법률 검토서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겨울 하늘이 밝았다. 멀리 회색 빌딩의 유리벽에 구름이 가느다란 줄로 비쳤다. “당신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태겸이 먼저 말했다. “하지만 시장을 완전히 멈추면 이미 정산권을 사들인 투자자도 손해를 입습니다.” “존재하는지 확인되지 않은 권리를 산 사람의 위험과, 임금을 못 받은 사람의 권리를 구분해야 합니다.” 세린이 답했다. 태겸은 계약서를 넘겼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 가치를 거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주장은 지나칩니다.” “그런 주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세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어떤 권리가 있고, 누가 동의했고, 어떤 사실을 투자자에게 설명했는지가 문제입니다.” 민석은 태겸에게 2016년의 시험 파일 자료를 내밀었다. 그는 복사 이력을 보여 주되, 당시 당사자의 이름이 포함된 서류는 가렸다. “이 파일을 써도 된다고 승인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태겸은 종이를 읽고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 “회사 내부 절차를 통해 도입됐습니다.” “그 절차에서 실제로 제 서명이 확인됐습니까?” “저는 기술 검증 서명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태겸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인정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제 이름으로 보관인 교체를 요청했죠?” “프로그램상 기존 보관인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법한지 확인하려 했고요.” “확인하기 전에 제 이름으로 공표할 수 있었습니까?” “그 공표는 보류됐습니다.” “보류된 이유는 우리가 막았기 때문이죠.” 회의실 공기가 차가워졌다. 서윤은 두 사람의 말을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공지해 두었다. 태겸도 동의했다. 단, 공개 인터뷰로 취급하지 않고 인용할 때는 추가 확인을 거치기로 했다. 잠시 후 태겸이 손가락으로 계약서의 한 줄을 짚었다. “당신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시험 파일은 그냥 복사된 게 아니에요. 2016년 종료 당시 한시 대여로 처리됐습니다.” “누구에게요?” “당시 위탁 사업자입니다. 이후 몇 차례 회사가 바뀌며 운영권과 데이터 보관권이 분리됐어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여 파일의 반납 증빙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반납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희도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은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실을 언제 보고받으셨습니까?” 태겸은 입술을 다물었다. “지난주입니다.” “그 이전에 내부 경고는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거래에 연결됐는지는 확정되지 않았어요.” 민석은 창밖을 다시 바라봤다. 그는 오늘도 상대방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태겸이 말한 일부가 내부 기록과 맞는지 확인해 볼 가치는 있었다. 회의실을 나오는 길에는 익일금융의 상품을 샀다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손에 계약서 복사본을 들고 서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 달라고 했다. ‘천억 원 규모’라는 설명이 맞는 줄 알고 투자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그 돈이 전부 가짜라는 겁니까?” 남자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렇게 확정된 건 아닙니다.” 세린이 답했다. “현재 확인된 건 그 규모가 현금 보유액이나 지급 확정액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에요. 계약 내용과 안내받으신 자료를 따로 검토받으셔야 합니다.” 민석은 남자의 손을 봤다. 계약서 가장자리가 수없이 접혀 있었다. 그가 숫자를 믿고 한 결정도 현실이었다.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을 찾는 일과,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보장받는 일은 다를 수 있었다. “그쪽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뜻이군요.” 민석이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전 남의 돈을 뺏으려고 한 적 없어요. 노후 자금 일부였어요.” 서윤은 그에게 별도로 취재 동의를 구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답하지 못했다. 서윤은 연락처를 강요하지 않았다. 민석은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왜 태겸이 ‘시장’을 말할 때마다 자신이 쉽게 반박할 수 없었는지 깨달았다. 그 시장을 믿고 들어온 사람들 역시 저마다 내일이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서문재가 따로 연락했다. 그는 같은 계약서의 2016년 초안을 가지고 있었다. 임시 대여에 동의한 사람은 강민석이 아니라 당시 운영위원회였다. 민석의 이름은 자료 운반 담당자로 적혀 있었을 뿐이었다. 누군가 수령 담당자 칸을 승인자 칸으로 옮겨 놓았을 가능성이 생겼다. “내가 막았어야 했습니다.” 문재가 말했다. “뭘요?” “대여 자체를요. 원본의 지급 기록과 시험 파일을 분리해서 보관하게 했어야 하는데, 기술 검증이라는 말에 너무 쉽게 허락했습니다.” 민석은 그 말을 위로로 받지 않았다. “그때 결정에 책임이 있다면 기록으로 남기세요. 말로 사과해서 끝낼 문제는 아닙니다.” 문재는 오래 침묵하다 동의했다. 그는 감독 절차에서 공식 진술하겠다고 했다. 민석은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마음을 놓지 않기로 했다. 저녁, 최은정에게서 연락이 왔다. 천 원 지급을 둘러싼 정정 검토가 진행 중이며, 상대 회사가 '이미 지급된 내역의 이체 증빙을 제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공식 답변서에 적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돈이 돌아온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청구를 허위라고 볼 근거도 없어졌다. “내가 이제 좀 이긴 겁니까?” 은정이 물었다. “한 걸음 간 거예요.” 민석이 답했다. “그럼 오늘은 기뻐해도 되겠네.” 민석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아직 계좌에 찍히지 않은 천 원이지만, 은정에게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말을 처음 공식 문서로 받은 날이었다. 밤 열 시, 원장은 새 조건을 띄웠다. [시험 파일 이용권 만료까지 10년] [대여자 재승인 시 정산권 정상화] [재승인 후보: 강민석] [권한 승계 시 예상 잔액: +100,000,000,000원] 민석은 화면을 읽고 기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빚이 아니라 백억 원을 준다네.” “그게 계좌에 있는 돈인가요?” “아니. 화면에만 있어.” “그럼 어제랑 같은 이야기죠.” 민석은 창가에 섰다. 처음에는 마이너스 백억 원에 놀랐고, 다음에는 천억 원이라는 종이에 겁을 먹었다. 이제 플러스 백억 원을 보자 오히려 마음이 차분했다. 숫자의 부호가 바뀌어도, 아직 그 돈의 주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가 휴대전화를 뒤집자 또 하나의 알림이 울렸다. 익일금융 감사팀의 발신 공문이었다. '시험 파일을 실거래 시스템에서 호출한 정확한 이력이 확인됐습니다. 요청은 내일 오전 공개 검토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짧은 첨부 제목이 붙어 있었다. '호출 사유: 050번 보관인 실명 대체.'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75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75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