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우의 계좌에 칠십삼만 원이 돌아온 것은 11월 9일 오전 아홉 시 오십삼 분이었다.
그는 입금 알림을 받자마자 웃지 않았다. 먼저 은행 공식 앱을 열고 거래 내역을 확인했다. 이번 달 급여 정산 공제와 연결된 조정금 반환이었다. 금액은 정확히 730,000원.
“들어왔습니다.” 범우가 말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아이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범우는 잠시 목소리를 낮췄다.
“아이가 아침부터 축구화 사 달라고 조르는데, 이번 주엔 사 줄 수 있겠어요.”
민석은 반사적으로 축하한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일해서 받을 돈을 뒤늦게 받은 사람에게 축하한다고 하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확인하셔서 다행입니다.”
“네. 다행이죠. 다만 일주일 늦은 건 그대로예요.”
범우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민석은 계좌의 숫자를 다시 확인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돈을 되찾았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빌린 생활비의 이자나 약속을 미룬 사람과의 관계는 자동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오전 열한 시. 서윤은 범우의 입금 사실을 기사에 추가할 수 있는지 허락을 구했다. 범우는 금액과 정정 사유만 익명으로 인용해도 좋다고 했다. 사건을 해결한 영웅으로 누군가를 그려 주지는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그냥 회사가 자기 잘못을 고쳤다고 쓰면 됩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기사의 제목은 ‘정산 조정금 오류 확인, 공제액 반환’이었다.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 제목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서윤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기사를 다시 읽었다. 사람들이 댓글에서 누구 잘못인지 서둘러 결론을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이는 범우가 사기를 당했다고 썼고, 어떤 이는 수수료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둘 다 기사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댓글창을 닫았다. 취재 중인 사람이 모든 오해를 실시간으로 고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확인된 사실을 정확히 적는 것만큼은 할 수 있었다.
혜진이 옆에 앉았다.
“십 년 전 기사 때문에 네가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더라.”
“그때 한 줄만 더 썼다면 달라졌을까 싶어서요.”
“어쩌면. 하지만 지금 네가 쓴 한 줄도 누군가에게 중요할 거야.”
서윤은 창밖을 봤다.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 너머로 역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엔 제가 한 일을 제가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 않은 일까지 제 이름을 쓰게 두지는 않을 거예요.”
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록을 남겨. 누구의 말인지, 무슨 자료인지, 네가 어디까지 확인했는지.”
서윤은 지하철에서 내려 스마트폰 메모를 열었다. 화면 맨 위에 적었다. '칠십삼만 원이 돌아왔다는 사실과, 칠십삼억 원의 거래가 중단됐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그 문장 아래에는 아직 미확인인 질문이 열 개나 남아 있었다.
반면 익일금융의 건물 안은 조용하지 않았다. 회사는 일부 계약 자료가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체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태겸은 투자자 설명회에서 검증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내려놓는 순간 서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녀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한서윤 명의의 확인 제공자 문서는 누가 작성했습니까?”
“현재 내부 감사가 진행 중입니다.”
“당사자 동의 없이 작성됐다는 의혹은 확인하고 있습니까?”
“검증 결과가 나오면 설명하겠습니다.”
“그 문서가 칠십삼억 원의 투자 검토에 활용됐습니까?”
태겸이 잠시 말을 골랐다.
“검토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 이름을 사용한 사실은 부인하지 않으시는 거군요?”
“정확한 사용 경위는 조사가 필요합니다.”
서윤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는 일부 자료가 사용됐다는 사실만 인정했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것을 공식 답변 이상으로 확대하면 오히려 사실관계를 흐릴 수 있었다.
오후 다섯 시, 세린은 2016년 변경 요청서에 관한 원본 열람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문재가 제공한 사본의 번호와 일치하는 원본이 존재한다고 했다. 민석의 이름으로 적힌 서명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준성은 그 말을 듣고 오래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네가 사인했다고 인정하면 쉬워지지 않냐?”
민석은 친구를 돌아봤다.
“그게 왜 쉬운데?”
“누군가 다 책임지고 끝내면…”
“그건 원장이 원하는 거야.”
준성이 말없이 민석을 보았다.
“한 사람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돈을 정리하는 거. 처음부터 그게 문제였잖아.”
“맞아.”
준성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또 편한 답을 찾았어.”
민석은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지 않았다. 위로 대신 계약서를 함께 읽었다. 서로 기억하는 날과 문서에 찍힌 날짜를 비교했다. 작은 차이가 두 군데 있었다. 준성이 자필로 적은 금액과 전산 입력 금액이 달랐다.
“이게 원본으로 확인되면 내 말도 바뀌어야겠네.” 준성이 말했다.
“네가 틀렸다는 걸 알아도 네가 쓸모없는 건 아니야.”
“왜?”
“그럼 이제 정정할 수 있잖아.”
밤 아홉 시. 원장은 다시 밝아졌다.
[실제 반환 확인: 730,000원]
[칠십삼억 원 거래 검토: 부분 중지 유지]
[한서윤 명의 책임 기록: 보류]
민석이 긴 숨을 내쉬었다.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원장이 예고한 칠십삼억 원의 손실 자체가 어떤 의미였는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윤의 이름으로 투자 판단을 확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하나씩 기록에 남고 있었다.
그날 밤 서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일 하루는 취재 안 하고 쉬려 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내일의 제 통장 잔액을 원장 없이 확인해 보려고요.'
민석은 웃었다. 원장 없이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메시지 입력창을 닫자 화면이 갑자기 검게 변했다.
[원장 관리자: 시스템 재편 요청]
[대상: 예측을 수정한 사용자]
[관리자 실명 확인 단계]
잠시 뒤 그의 얼굴이 카메라 화면에 비쳤다. 민석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자신이 동의한 적 없는 촬영 화면이었다.
그러자 원장이 글자 하나를 띄웠다.
[강민석]
그 아래 뜬 문장은 더 짧았다.
'너는 이미 한 번 이 시스템을 멈췄다.'
민석은 얼어붙었다.
'2016년에. 네가 잊어버린 그날.'
이번에는 누가 시킨 가짜 승인인지 따지는 일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이 잊은 십 년 전의 선택이, 지금도 원장의 가장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제4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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