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수요일 오전 열 시.
시청 근처의 공용 회의실에는 414개의 이름이 들어오지 못했다. 실제로 모인 사람은 열두 명뿐이었다. 몇 명은 멀리 살았고 몇 명은 자신의 기록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몇 명은 이 사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민석은 빈 의자를 보면서 그 점이 오히려 옳다고 생각했다. 모든 당사자를 자기 뜻대로 한곳에 불러 모을 수는 없었다.
세린은 414건 중 세 가지 분류를 보드에 적었다. 예정 지급 263건, 본인 확인 대기 96건, 분쟁 보류 55건. 한 사람에게 여러 건이 있을 수 있다는 별도 주석과 달리, 이 목록에는 서로 다른 사람 기준으로 정리된 대상이 414명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실제 지급이나 본인 확인의 상태는 따로 점검해야 했다.
“우리 목적은 414명을 똑같이 취소하거나 똑같이 지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은이 말했다. “본인이 고를 수 있게 하는 거죠.”
회의에는 오연희, 문정아, 정다연도 왔다. 백소희는 화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켜지 않았다. 누구도 그 선택을 문제 삼지 않았다.
도담보관정산의 법무 담당자가 제시한 임시 조치안은 단순했다. 원장이 ‘완료’라고 표시하더라도, 은행 지급과 원본 수령과 이의신청 철회는 각기 별도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시스템끼리 전달된 기록을 근거로 사람의 서명을 대체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과거에 잘못 처리된 기록은 하나씩 검토해야 했다.
“결국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거네요.” 민석이 말했다.
“원래 그래야 했어요.” 예린이 대답했다.
예린은 자신이 만든 초기 검사 기능이 어떻게 왜곡됐는지도 설명했다. ‘미래 사용자’는 실제 2036년의 사람이 아니라, 아직 서명하지 않은 사용자의 자리에 임시로 채워 넣는 시험용 명칭이었다. 2036이라는 연도는 시험 데이터가 운영 날짜와 겹치지 않도록 정해 둔 값이었다. 그래서 경고 문구가 살아 있어도 ‘다른 시간에서 온 사람’이 존재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미래의 제가 남긴 말은 다 거짓이었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아니요. 사람이 쓰지 않은 서명을 사람이 쓴 것처럼 처리하지 말라는 경고 자체는 진짜였어요. 다만 그 문장의 작성자가 미래의 민석 씨는 아니었던 거죠.”
민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구해 준 것이 시간 여행자라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사실은 누군가가 늦게라도 발견하기를 바라고 심어 둔 오류 메시지였다. 놀라움은 줄어들었지만, 그 문장을 남긴 사람의 마음은 더 선명해졌다.
오후 한 시, 문정아가 회의실 밖으로 민석을 불렀다.
“저는 아직도 17번 확인서가 무서워요.”
“그 문서 때문에요?”
“아뇨. 다들 설명해 주는데도 내가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또 대신 결정할까 봐요.”
민석은 한동안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 달라고 해도 됩니다. 오늘 결정 안 해도 되고요.”
정아는 작게 웃었다. “이제야 제가 원하는 말을 들었네요.”
그녀는 회의실로 돌아가 자신에게 배정된 선택지 중 ‘재검토 후 회신’을 선택했다. 그 한 줄에 누구도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후 세 시, 박준성은 자신의 2018년 검토 의견과 그 뒤에 남겨 둔 메일을 외부 조사에 제공했다. 그는 잘못된 시스템 구조를 직접 승인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구조의 위험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는 진술서를 냈다. 민석은 복도에서 기다렸다. 준성이 나오자 종이컵을 건넸다.
“왜 나한테 미리 말 안 했어?”
“네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봐.”
“그래서 더 오래 친구인 척한 거냐?”
준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민석은 말했다. “네가 한 일은 네가 책임져. 그걸 대신 짊어질 생각은 없어. 그래도 지금 한 말은 듣겠어.”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예전처럼 농담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함께 걸어야만 다음 장소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녁 여섯 시, 기관 측에서 처리 현황이 도착했다. 414건 중 38건의 요청 상태는 당사자 개별 확인을 통해 정상 분류로 되돌아갔다. 나머지는 ‘일괄 취소’ 여부가 아니라 각자의 원래 상태를 기준으로 계속 확인해야 했다.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의 잘못된 버튼으로 모든 기록을 끝내지는 못하게 됐다.
원장 화면의 빨간 막대가 절반 정도 흐려졌다.
[일괄 취소: 외부 승인 불가]
[내부 상태값 정리: 진행 중]
[예정 시나리오 최종 보존 요청: 02.26]
민석은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대신 그날 열린 회의의 기록을 보존 절차에 맡겼다. 그리고 처음으로 ‘414명’이라는 숫자 옆에 작은 글씨를 적었다.
‘414개의 서로 다른 답.’
제19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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