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월요일 새벽, 준성은 그날 가장 먼저 김예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증용 확인 17이 실패했대요.”
“무슨 근거로요?”
“검은 원장에 그렇게 떠.”
“그럼 우선 검은 원장은 참고 정보로 두세요. 실제 실행 기록을 확보해야 합니다.”
예린의 차가운 대답에 준성은 잠이 달아났다. 그 역시 흥분했던 것이다. 검은 화면이 진실을 말해 준다고 믿는 순간, 그들이 고치려는 시스템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월요일 오전 운영사 공식 창구에 필요한 보존 요청을 접수했다. 담당자는 자동 발행된 결과물 한 건의 확인 규칙이 변경된 흔적이 있는지 조사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다만 서비스 전체 로그를 무제한으로 제공할 수는 없었다. 정식 요청 범위 안에서 사업자와 관련 기관이 확인해야 했다.
오전 열 시, 서윤이 취재용 동의서를 들고 왔다. 그녀는 2016년 학교 신문에 남아 있던 제보자들에게 연락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몇몇 연락처는 오래전에 바뀌었고, 일부 사람들은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제 와서 전화하면 민폐겠죠?”
“그럴 수도 있어요.” 민석이 답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무슨 기록이 남았는지 모른 채 지내게 할 수도 없고요.”
“그 선택은 그분들이 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원하지 않으면 더 묻지 않고요.”
서윤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원한 것도 그거였어요. 받지 않았다는 사람에게 받을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확인할지 말지를 직접 선택하게 하는 것.”
준성이 들고 온 공식 회신은 오후 두 시에 도착했다. 당직 기술자는 '검증용 확인 17'을 정상적으로 거쳤다는 로그가 한 경로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며, 대체 검증 경로가 사용된 흔적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오류인지 승인된 예외 처리인지, 또는 부적절한 우회인지 판단하려면 승인 문서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민석은 종이에 세 칸을 그렸다.
'확인됨 — 알 수 없음 — 확인되지 않음.'
“너 요즘 그 세 칸밖에 안 써?” 준성이 물었다.
“예전에는 전부 확인됐다고 썼다가 우리가 이렇게 된 거잖아.”
준성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민석은 웃을 수 없었다. 첫 번째 범주에 잘못 들어간 사람들이 겪었을 일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오후 네 시, 윤혜라가 찢어진 수첩 페이지의 비교 결과를 전달했다. 2016년 페이지를 촬영했다는 사진 3종 가운데 하나는 2018년 서한문서관리의 내부 보고서에 삽입된 스캔본과 일부 같은 흔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민석이 보관 중인 수첩에서 실제로 뜯겨 나간 종이와 물리적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실물은 없었다.
“그럼 서문재가 보여 준 문장은 진짜일 수도 있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가능합니다. 다만 원래 페이지 전체가 어떤 문맥인지 모릅니다.”
서윤은 화면을 확대했다. 2018년 보고서 속 문장은 2026년에 제출된 사진보다 한 줄 더 길었다.
'한서윤의 질의를 받기 전에는 17번을 완료로 옮기지 말 것. 누가 내 대신 확인했다고 적더라도.'
마지막 부분은 '내 대신'이었다. 십 년 전 강민석이 승인 서명을 거절했던 이유가, 이제 비로소 말이 되는 듯했다. 거절이란 단순히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일이 아니라, 나중에 누군가 자기 이름을 빌려 확인을 만들어 낼 것을 미리 경고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민석은 그 문장을 자기 기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원본을 보지 못했다.
해 질 무렵 서윤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대학 시절 연락이 끊겼던 제보자 중 한 사람이었다. 상대는 실명 공개도, 녹취도 허락하지 않았다. 단지 어떤 기록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돈은 못 받았는데 지급 완료로 남았대요.” 상대가 말했다. “그래서 몇 년 뒤 다른 지원금을 신청할 때, 이미 받은 금액이 있다고 설명하더라고요. 전 그 돈을 만져 본 적도 없어요.”
서윤은 직업을 묻지도, 이름을 기사에 쓰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공식 대조 창구의 연락처를 안내하고 본인이 원하는 범위에서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화가 끝나자 서윤은 탁자에 이마를 기댔다.
“이건 10년 된 데이터 문제가 아니에요.”
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영향을 받는 사람의 일이에요.”
민석은 회사 근처를 걷다 자신도 모르게 복권 판매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모두가 내일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평범하게 줄을 설 수 있었다면 지금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했다. 적어도 복권 번호를 모르더라도 결과를 바꾸려고 타인의 이름을 사용할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근처 분식집에서 준성과 김밥을 나눠 먹으며 그는 말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돈 문제에 붙잡힐 줄 알았으면, 그날 은행 앱을 꺼 버릴걸.”
“그날 껐어도 보고서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을지 몰라.”
“그럼 이 일을 안 하는 편이 편했겠지.”
“편한 거랑 맞는 거랑은 다르니까.”
민석은 말없이 단무지를 씹었다. 그런 말은 원래 자신이 준성에게 하던 말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르는 돈을 먼저 아는 능력으로 단숨에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새 성공의 기준이 누군가의 이름을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는 일로 바뀌고 있었다.
그는 김밥 값을 카드로 결제하고 실제 영수증을 받았다. 종이에는 날짜와 금액, 가맹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석은 하찮게 느껴지던 영수증을 바라봤다. 적어도 이 종이는 그가 방금 무엇을 샀는지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
밤 열 시, 검은 원장은 다음 날의 새로운 숫자를 띄웠다.
[2026.12.22 09:17]
[예정 거래: +48,000원]
[수취 예정자: 최초 미수령인]
[은행 계좌 확인: 불가]
민석은 오래전 실제로 받은 48,000원을 떠올렸다. 같은 금액이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취인이 자신의 이름이 아니었다.
[대표 대리 확인: 강민석]
[대리 확인 미완료 시: 제3자 자동 지정]
그는 화면을 세린에게 보내고, 내일 오전 예정된 회의의 참석자 명단을 다시 확인했다. 제3자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대표를 거절하면 누군가 대신 앉는다는 구조. 이번에도 누군가를 대신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거기에 들어가려는 이름이, 밤 열 시 삼 분에 새로 생겼다.
[제3자 자동 지정 후보: 정도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연구원의 이름이었다.
제12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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