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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121화
PAYLUA ORIGINAL · 제121화

121화. 찢어진 이름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704자

오프라인 책장
12월 16일 수요일 밤 열 시 사십 분. 강민석은 찢어진 수첩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손을 떼지 못했다. 형광등 아래 누렇게 바랜 종이는 평범했다. 10월 25일이라고 적힌 날짜, 모서리에 묻은 커피 자국, 그리고 안쪽으로 뜯겨 나간 한 장. 그러나 그 자리에 없어야 할 두 글자가 눌린 자국으로 남아 있었다. 서윤. 그가 한서윤을 만난 건 올해였다. 십 년 전에는 이름조차 들은 기억이 없었다. 민석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밤늦게 전화를 걸어 '십 년 전 내 수첩에 당신 이름이 있어요'라고 말하면 기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를 의심할 것이다. 그는 문득 120화에서 서윤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안 했다는 말을 증명하려면 먼저 무엇이 실제로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그는 수첩 앞뒤를 촬영했다. 찢어진 부분에 직접 연필을 문질러 보려던 손을 멈추고 투명 파일에 넣었다. 원본은 한 번 훼손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었다. 휴대전화의 검은 원장에서는 한 줄이 주기적으로 깜박였다. [미수령인: 한서윤] [다음 조회: 2026.12.17 09:17] 검은 원장이 표시한 '미수령인'은 무엇을 받지 못한 사람인가. 돈인가, 봉투인가, 사실인가. 민석은 시간을 확인하고 서윤에게 문자만 보냈다. '2016년 개인 수첩에서 이상한 흔적을 찾았습니다. 내일 아침 원본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름이 적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판독 전입니다.' 답장은 십 분 뒤 도착했다. '어떤 이름인지는 아직 말씀하지 마세요. 내일 제가 직접 보겠습니다. 사진과 보관 상태는 남겨 두세요.' 예상과 다른 답이었다. 그는 이름을 알려 주고 싶었고, 서윤은 모르는 상태로 보고 싶어 했다. 기자로서 기억이 먼저 만들어지는 걸 피하고 싶은 것일까. 민석은 수첩이 놓였던 서랍을 확인했다. 2016년부터 이 집에서 산 것은 아니었다. 이사를 두 번 했고, 낡은 종이와 월급명세서를 담은 상자는 옮길 때마다 따라왔다. 그동안 누가 수첩을 만졌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몇 달 전 기록 관리 기관에 일부 사본을 제출하며 책 전체를 펼친 적도 있었다. 한참 뒤 준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아직 안 자? 메시지에 수첩이라고만 써 있으니까 불안하잖아.” “2016년 10월 25일 페이지가 없어.” “그때 수첩을 우리가 같이 썼던가?” “아니. 나 혼자 들고 다니던 거야.” “그럼 지금 찍어 둬. 누가 언제 뜯었는지 모르면 '2016년에 뜯겼다'고 말하지 말고.” 준성의 조심스러운 말투가 익숙했다. 몇 주 전 같았으면 민석은 답답해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지적이 고마웠다. “또 한 가지.” 민석이 말했다. “종이 밑에 이름처럼 보이는 글씨가 있어.” “무슨 이름?” “지금은 확인을 먼저 할게.” 전화가 끝난 뒤 그는 겨울 코트를 의자에 걸고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했다. 이름이 실제로 적혀 있을까 봐 두려운 게 아니었다. 만일 이름이 진짜라면, 서윤이 자기 인생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이 아니라 십 년 전 기록에 이미 들어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새벽 한 시 무렵 검은 원장에 알림이 떴다. [열람 순서: 보존자 확인 → 당사자 확인] [보존자 강민석: 열람 의사 미확정] 민석은 화면을 끄고 처음으로 원장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 자신이 무엇을 할지 미리 써 놓은 글이 사실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잠을 포기하고 부엌으로 나왔다. 냉장고 안에는 반쯤 남은 김치와 지난주에 사 둔 두부가 있었다. 계란을 삶는 동안 어머니에게 못 보낸 안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원장이 나타나기 전의 그는 이런 밤이면 내일 주식이 얼마나 오를지 검색했을 것이다. 지금은 과거의 자신이 내일 누군가를 다치게 만들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문득 그는 십 년 전 회사 생활을 기록해 둔 달력을 찾았다. 낡은 전자 메일 백업 안에는 2016년 10월 25일 오후 네 시 '자료 회수'라는 일정이 남아 있었다. 참석자란은 비어 있었고 장소는 4층 복사실이었다. 수첩이 찢긴 날짜와 같은 날이라는 사실은 단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기록 역시 그가 무엇을 했는지 말해 주지는 않았다. 민석은 일정 화면을 별도로 저장한 뒤 '내 기억'과 '확인된 기록'이라는 두 제목 아래 내용을 나눴다. 내 기억에는 네 시쯤 누군가와 다퉜다는 막연한 감각만 있었다. 확인된 기록에는 '자료 회수'라고 쓴 일정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빈칸을 채우지 못한 채 그는 새벽 창 밖을 바라봤다. 회색 아파트 벽에 하나둘 불빛이 켜지는 것이 보였다. 누구에게나 아침은 왔다. 하지만 그의 수첩에는 어제와 오늘의 순서가 갑자기 흐려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수첩을 든 채 세온기록관리로 향했다. 입구 유리문 너머로 한서윤이 서 있었다. 서윤은 그의 얼굴보다 투명 파일 속 수첩을 먼저 봤다. “제가 이름을 보고 말할게요.” 민석이 수첩을 열었다. 서윤은 거의 일 분 동안 종이를 들여다봤다. 그러다 예상 밖의 말을 했다. “이거, 제 이름이 아닐 수도 있어요.” “네?” “여기 첫 글자 오른쪽이 잘렸어요. 그리고 제 이름이라면, 왜 그 밑에 숫자 17이 같이 있죠?” 민석은 다시 들여다봤다. 희미한 눌림 아래에 확실히 두 줄이 있었다. 이름처럼 보이던 두 글자 밑에, 작은 숫자와 획 하나. 17. 그동안 그가 쫓던 것은 금액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름에 붙은 숫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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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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