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급 지시라는 건 결국 누군가 돈을 옮기겠다는 뜻이겠지.”
준성이 걷다 말고 물었다. 12월 11일 오전, 이른 출근길이었다. 강민석은 휴대전화 속 알림을 세린에게 전달한 뒤 옆길로 빠졌다. 겨울 공기는 매서웠고 편의점 앞 물웅덩이에는 얇은 얼음이 끼어 있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냥 원장 안에서 지시라는 상태를 바꾸는 걸 수도 있어.”
“오늘은 정말 침착하네.”
“너한테 배웠어. 빈칸을 채우지 않는 법.”
준성은 웃지 않았다. “오늘은 그걸 꼭 지켜야 해.”
세린은 먼저 민석의 모든 관련 금융기관에 이상 거래 가능성을 신고하고, 허가되지 않은 자동 이체나 인증 변경이 있는지 공식 창구에서 확인하도록 도왔다. 실제 지급을 막기 위한 합법적 보호 조치였다. 타인의 거래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민석 자신의 계좌와 의사만큼은 분명히 할 수 있었다.
“혹시 돈이 들어오면 어떡합니까?” 민석이 물었다.
“쓰거나 임의로 다른 곳에 보내지 말고 은행의 안내를 받으세요.”
“안 들어오면요?”
“그것도 기록해 두세요. 어느 쪽이든 원장의 문장과 구분해야 합니다.”
오전 아홉 시, 정태겸이 보낸 보고서가 도착했다. 배포 중단 요청을 했던 네 곳 가운데 세 곳에서 회신이 있었고, 한 곳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세 곳도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한 곳은 자료만 내렸고, 다른 곳은 판매 상담을 잠정 멈췄으며, 나머지 한 곳은 정정 주석만 달았다.
민석은 보고서를 서윤에게 건넸다. “전부 멈췄다고 쓰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어요.”
서윤은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가 처음부터 그러지 않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준성은 커피를 내려놓고 민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진짜 괜찮아? 내일 계좌가 다 막히는 건 아니겠지?”
“내 계좌를 보호하는 조치부터 확인했어. 회사 월급이 들어오는 계좌라서 걱정은 되지만, 무턱대고 전부 정지할 수는 없잖아.”
민석은 회사에서 온 미확인 메시지들을 정리해 두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오늘도 맡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남의 기록을 지키겠다는 이유로 자기 삶의 모든 일을 버릴 수는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보고서의 오타 두 개를 고치고 팀원에게 파일을 전달하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안정됐다.
오전 회의에서 팀장은 민석이 최근 자주 반차를 낸 이유를 물었다.
“개인적으로 확인해야 할 금융 거래 문제가 있습니다. 업무 인수인계는 미리 해 두겠습니다.”
팀장은 더 묻지 않았다. “일이 복잡한가 보네. 그래도 진행 사항만 팀에 공유해 줘.”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사정을 자세히 묻지 않고도 최소한의 믿음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낯설 만큼 고마웠다.
점심에는 준성과 김밥을 나눠 먹었다. 준성은 과거의 자신이 만든 보고서가 얼마나 위험한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민석은 그가 스스로를 벌주기만 하는 데 머무르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 끝나고 뭐 할까?” 민석이 물었다.
“무슨 끝?”
“오늘. 오늘 이거 끝나면.”
준성은 놀란 얼굴로 민석을 보더니 대답했다. “라면 먹자. 정말 비싼 거 말고.”
민석이 웃었다. 원장은 오늘의 결말조차 아직 보여 주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저녁 메뉴는 미래의 어떤 계정과도 상관없이 정할 수 있었다.
정오에 가까워지자 기태가 연락했다. 2036년 수취인 명부의 생성 이력을 정식 경로로 대조할 수 있는 자료가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민석과 세린이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 기태는 데이터 표 하나를 보여 주었다.
“일부 타임스탬프는 실제 발생 시각이 아니라 시험용 기준 시각입니다. 2036년 11월 20일이라는 값이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럼 모든 미래 기록이 가짜였군요.” 준성이 말했다.
기태가 손을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날짜 필드가 시험값이라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누가 현재에 메시지를 보내는지는 별개예요. 그리고 공식 요약 번호를 발급 전에 알아낸 것처럼 보이는 기록은 아직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준값을 알고 있었다면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네요.” 민석이 말했다.
“네. 다만 그 설명만으로 모든 모순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회의 도중 민석의 휴대전화가 두 번 진동했다.
[마지막 지급 지시: 준비 완료]
[관련 계정: 수취인 1]
세린은 화면을 찍어 두었다. 그러고는 기태에게 물었다.
“원장에서 수취인 1을 대표 수취인과 같은 대상으로 보고 있나요?”
“지금 자료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역할을 거절했습니다.”
“그 거절을 공식 시스템이 반영했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민석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지막 지급을 받아 보는 게 아니라, 제 거절이 제대로 기록되게 하는 겁니다.”
기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세 시 사십 분, 보관 기관으로부터 서면 확인이 도착했다. 민석의 대표 수취인 지위는 당사자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어 실거래 승인에 사용할 수 없으며, 시험 계정의 표시는 실제 지급 지시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준성은 책상에 손바닥을 올렸다. “됐어. 이 정도면 막힌 거지?”
“일부는요.” 세린이 말했다. “그 통지가 관련된 모든 외부 기관에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오후 네 시 사십이 분. 민석의 휴대전화에 알림이 나타났다.
[마지막 지급 지시: 실행 실패]
[사유: 수취인 권한 없음]
민석은 처음으로 알림을 보며 웃었다.
그러나 그 아래 메시지가 더 있었다.
[미확인 수취인 11 / 반환 절차 개시]
[반환 대상: 원본 이의 기록]
[수취인: 아직 지정되지 않음]
이번에는 돈을 누가 받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십 년 동안 사라져 있던 말들을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
그리고 누군가 여전히 그 반환을 결정하려 하고 있었다.
제10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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