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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107화
PAYLUA ORIGINAL · 제107화

107화. 유효한 거짓 서명

내 통장에 내일의 돈이 입금된다 · 2,640자

오프라인 책장
전자서명은 화면에 도장이 찍힌다고 성립하는 게 아니다. 김예린은 그렇게 말하며 소형 회의실의 모니터를 켰다. 그곳에는 2036년 강민석 명의로 작성됐다는 대표 수취인 지정 신청서가 떠 있었다. 어두운 배경의 검은 원장에서 본 문서와 같은 글꼴, 같은 번호, 같은 시각이었다. “여기에 ‘유효’라고 쓰여 있죠.” 예린이 말했다. “누가, 어떤 근거로 유효하다고 판단했는지 없어요. 전자서명 검증은 그런 표시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명 생성 시점의 권한, 원본 문서가 바뀌지 않았는지, 실제 검증 결과가 따로 남아 있어야 해.” “이걸 조작할 수도 있습니까?” 민석이 물었다. “화면은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법적 효력이 있는 승인처럼 쓰였다면 그것부터 조사해야죠.” 세린은 이미 검증 가능한 공식 전자문서가 있는지 해당 기관에 요청했다. 민석에게 보여 준 것은 자료 보존 요청서의 사본뿐이었다. 개인 계정의 인증 정보를 탐색하거나 시험 계정에 직접 접속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예린은 쉽게 이해시키려고 종이 영수증 두 장을 꺼냈다. 하나에는 민석의 이름을 적고 그 아래에 ‘확인 완료’라고 썼다. 다른 하나에는 실제 회의에 참석한 사람의 명단, 서류가 작성된 날, 원본 보관 장소, 확인 절차를 적었다. “둘 다 영수증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종이는 제가 방금 이름을 썼을 뿐이에요. 어떤 돈이 오갔는지 알 수 없죠. 컴퓨터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유효’라는 필드가 있다고 그 서명에 효력이 생기지는 않아요.” 민석은 첫 번째 종이를 집었다. 이름이 적혀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자기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구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았다. “그럼 검은 원장이 내 이름을 써 놓고, 그걸 근거로 다시 승인됐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할 수 있는 말을 실제로 효력이 있는 말처럼 포장하는 방식이겠죠. 그렇다고 이 화면만 가지고 범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요.” 준성은 옆에서 오래된 데이터 명세서를 읽었다. 그가 2018년 검토했던 건 '서명 상태' 칸에 오류가 없느냐는 문제였다. 그 값이 무엇을 증명하는지 누구도 묻지 않았다. 준성은 멀쩡한 열두 자리 코드가 잘못된 뜻을 얻는 데 얼마나 적은 시간이 필요한지 떠올렸다. “저번에 민석이가 그러더라.” 준성이 말했다. “아무도 안 받은 돈을 누구나 받은 것처럼 보게 하는 게 이 시스템의 문제라고. 그런데 반대로, 진짜 받은 돈도 원장에서는 안 받았다고 할 수 있어. 어느 쪽이든 우리는 확인해야 해.”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원장이 맞는다고 말할 때뿐 아니라 틀렸다고 말할 때도 근거를 요구해야 했다. 오후 두 시, 정태겸으로부터 추가 회신이 왔다. 회사가 보유한 문서는 ‘전자서명 유효’라는 문자열이 포함된 보고서 출력물일 뿐, 별도 인증기관 검증 결과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이 서명은 유효하지 않은 겁니까?” 민석이 물었다. “아직 그 결론까지는 안 갑니다.” 세린이 말했다. “다만 유효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해요.” 준성은 한때 자신이 검토했던 2018년 프로그램 설명서를 펼쳤다. 기능 목록 아래 아주 작은 주석이 있었다. ‘서명 상태: 시험 데이터의 필드값. 법적 인증 여부 표시 아님.’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그때 주석이 작다고 지적했어야 했는데.” “넌 주석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잖아.” 민석이 말했다. “그걸 변명으로 쓰고 싶지 않아.” 준성은 눈을 감았다. “나는 숫자가 맞는지만 봤어. 누가 그 숫자를 진짜 돈이라고 믿게 될지는 생각 안 했지. 그게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야.” 민석은 친구의 어깨를 잡았다. 위로할 말을 찾았지만, 함부로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물었다. “지금은 그 주석을 다시 보이게 만들 수 있지?” “그래. 모든 문서에.” 두 사람은 자료 검토 기관에 전달할 정정 비교표를 만들었다. 2016년 원본 문장, 2018년 설명서 주석, 2026년 외부 보고서의 요약 문구를 세 줄로 나란히 놓았다. 표의 마지막 칸에는 ‘실제 지급·법적 승인 확인 필요’라고 적었다. 밤, 서윤의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자서명이 가짜라는 기사, 지금 바로 쓸 수 있겠어?” 서윤은 단호하게 답했다. “아직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확인된 건 유효하다는 표시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목이 약해지는데.” “약한 제목이 사람을 덜 속입니다.” 편집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기사 게재를 하루 늦추라고 했다. 자정에 가까워질 무렵, 민석의 원장 화면에서 ‘전자서명 유효’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대신 아래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대표 수취인 지정 신청서] [서명 검증: 근거 불충분] [상태: 외부 확인 대기] “바뀌었네.” 민석이 말했다. 예린은 오히려 표정이 굳어졌다. “이렇게 빨리 바뀔 수 있다는 게 이상해요. 공식 확인 회신은 내일 도착할 텐데.” 잠시 후 원장에 새로운 통지가 나타났다. [2036년 검토자 의견: 서명은 내가 하지 않았다] [검토자: 강민석] 민석은 손바닥을 폈다. 자신은 이제까지 서명을 안 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미래 날짜가 적힌 계정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이 그의 등을 서늘하게 했다. '네가 나를 의심하는 이유를 알아. 나도 처음에는 너를 의심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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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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