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심의를 청구하려면 이해관계자의 명단이 필요했다.
윤재하는 당연히 다섯 지역의 대표를 떠올렸다. 수로가 연결된 유리포, 방직촌, 리아넬 치료소, 카르도 군 보급망, 그리고 신전이 자리한 마을. 하지만 세리아가 만든 신청서는 여섯 번째 칸을 비워 두었다.
“제6지역은 현재 거주자가 없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후손과 기록의 관계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그분들이 사라진 마을의 주민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빈칸으로 두는 겁니까?”
“빈칸으로 두고 이유를 적어야죠.”
에반이 고개를 저었다. “천계는 빈칸을 싫어해. 빈칸이 있으면 아무 이름이나 채우고 싶어 하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못 채운다고 적는 겁니다.” 릴리가 말했다.
재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기록하는 일. 신에게는 어쩌면 가장 어려운 권능이었다. 그는 노아에게 붉은 실로 표시된 봉투를 전하며 서류 전달을 부탁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넘길 이유가 없었다. 대신 함께 우체통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노아는 자신이 신전의 우편 담당관이 된 것처럼 허리를 폈다.
우편함을 닫는 순간 누리가 나타나 봉투에 배송 번호를 붙였다. “공동심의 예고는 접수했으나 최종 명부에는 전원 동의가 필요합니다.”
“전원이라는 게 누굽니까?”
“해당하는 사람 전원입니다.”
“그럼 평생 못 하겠는데요.”
“맞습니다. 천계는 한동안 그 사정을 유용하게 활용했습니다.”
재하는 종이 인형을 보았다. 누리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한 기록관리 장치를 넘어서, 조용하게 불편한 사실을 말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누리에게 의견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누리는 미묘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는 당사자의 의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누리 자신의 생각도요?”
종이 몸 안쪽에서 얇은 책장이 한 장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 질문은 기존 업무 규칙에 없습니다.”
첫 회의는 유리포의 수문 옆 창고에서 열렸다. 우르센은 장화에 진흙을 묻힌 채 들어왔고, 안나는 방직촌 노동자들이 적은 요구안을 들고 왔다. 리아넬의 치료사는 야간 교대를 마치고 눈 밑에 그늘을 달고 앉았다. 카르도의 보급대에서는 마테오가 참석했다. 헤이나는 제6지역 후손 중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전하러 왔지만, 대표 명패는 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앉자 에반이 큰 종이를 펼쳤다.
[우리가 왜 모였는가]
“내가 마케팅 문구를 생각해 봤어.”
“안 됩니다.” 안나가 즉시 말했다.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지난번에 ‘신앙 자유 혁명 할인 행사’라고 적었다가 한 시간 동안 설명하셨잖아요.”
에반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재하는 그 종이의 뒷면에 회의 목적을 직접 적었다. ‘서명권자 승계가 치료와 공공 공급에 미칠 영향을 확인하고, 대체 절차를 요구하기 위함.’ 누구를 뽑는 모임인지, 무슨 신을 믿을 것인지 적지 않았다.
우르센이 물었다. “왜 우리를 불렀습니까? 당신이 신이면 당신이 결정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불렀습니다. 저 혼자 결정하면 안 될 일 같아서요.”
“결정할 수 있는데 안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은 누가 집니까?”
가장 불편한 질문이었다. 재하는 서둘러 멋있는 대답을 만들지 않았다. 지금 가진 집행권은 제한되어 있고, 그가 할 수 있는 범위와 다른 기관의 책임을 나눠 적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답이 길어질수록 우르센의 표정은 조금 덜 날카로워졌다. 그는 결국 자신의 질문을 회의록 첫머리에 올려 달라고 했다.
리아넬 치료사는 공급 계획을 펼쳤다. “우리는 신을 바꾸려고 온 게 아닙니다. 내일 새벽 중환자실에 필요한 양이 얼마인지 확인하려고 왔어요.”
마테오가 받아 적었다. “제17보급대가 전환할 수 있는 비축량은 사흘치입니다. 그 후에는 국경 경계 장치 일부를 꺼야 합니다.”
“적이 공격하면요?” 우르센이 물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끌 수 있는지 정찰 기록이 필요합니다. 무턱대고 다 꺼버리면 안 됩니다.”
릴리는 병원의 명단을 살폈다. 환자의 이름은 적지 않고 상태와 필요한 처치만 분류해도 충분한 구간을 표시했다. “여기에는 이름을 안 적는 게 좋겠어요. 이 회의 참석자가 모두 환자 정보를 볼 이유는 없어요.”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의 첫 합의는 누구를 믿을지가 아니라, 누구의 이름을 쓰지 않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회의가 끝날 즈음 누리가 천계의 새로운 공문을 가져왔다.
[승계 적격성 제2후보 시연 통지]
[장소: 중앙 계약 보관소]
[시연체: 무기명 0호]
[민간 참관 허용: 2명]
“시연이요?” 재하가 물었다.
“자동 집행의 안정성을 보여 주겠다는 겁니다.” 세리아가 답했다.
에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장치는 법률을 읽지 않아. 조항을 실행해. 실행 조건이 충족되면 누가 울고 있는지 보지 못하지.”
그날 오후 재하와 세리아는 중앙 보관소에 갔다. 허가받은 민간 참관자는 릴리와 우르센이었다. 에반은 이전 설계 책임자 자격으로 기술 증언석에 앉았다. 거대한 원형 서고 한가운데 쇠빛 인형이 서 있었다. 얼굴 자리에 빈 도장판이 붙어 있었고, 양팔에는 끝없이 긴 계약 목록이 걸려 있었다.
[무기명 0호: 준비 완료]
[승계 시연: 소규모 의료 공급 계약 1건]
보관소의 관리관이 말했다. “법적으로 완벽한 집행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기계는 치료소의 보증 계약을 읽고 남은 신앙 포인트를 계산했다. 환자에게 제공할 양보다 계약상의 원금 상환이 먼저라는 조항이 나오자, 정확히 그 순서대로 분배했다. 화면에서는 빛의 양이 줄었다.
릴리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저 환자는 지금 산소 장치가 필요한 상태예요.”
“해당 사실은 계약의 입력 항목이 아닙니다.”
“그럼 지금 추가하면 되잖아요.”
관리관이 머뭇거렸다. “입력 항목의 변경은 정식 개정 심의가 필요합니다.”
기계는 망설이지 않았다. 산소 장치에 연결된 가상의 빛이 꺼졌다.
[집행 정확도: 100%]
보관소는 박수를 치도록 설계된 자동 음향을 흘려보냈다. 텅 빈 관람석에서 환호가 울렸다. 우르센이 벌떡 일어섰다.
“정확하게 사람을 죽였으면서 무슨 박수입니까?”
관리관이 황급히 설명했다. “실제 환자는 아닙니다. 시뮬레이션입니다.”
“그래서 실제가 되기 전까지 고칠 생각은 없는 거군요.”
재하는 기계 앞으로 갔다. “0호, 집행 전에 당사자에게 물을 수 있습니까?”
[당사자의 의사는 계약 성립 시점에 확인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 확인 기록은 어디 있습니까?”
[관할 서명권자의 인증으로 대체됩니다.]
“그 사람이 부당하게 인증하면요?”
기계의 얼굴판에 처음으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답변 가능한 항목이 아닙니다.]
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집행이란 말이 이렇게 불완전하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시연 기록의 보전을 요청했다. 관리관은 전례가 없다며 거절했지만, 세리아가 공개 시연의 참관권에는 기록 요청이 포함된다고 조항을 읽자 결국 승인했다.
시연이 끝난 뒤에도 재하는 보관소의 출입구에서 잠시 기다렸다. 방금 전 시뮬레이션에서 환자의 신성등이 꺼지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관리관은 실제 사건이 아니니 문제 삼지 말라고 했지만, 재하에게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서 더 중요한 장면이었다. 실제 사람이 누워 있었다면 모두가 서류를 돌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세리아는 시연 기록 복사본을 받아 날짜와 시각, 사용한 계약 유형, 가상 환자 조건을 확인했다. 그 다음, 기록에서 실명과 관련 없는 신상 항목을 지웠다. 투명한 화면에는 계약상의 상환 순서와 장치의 응답이 남았다.
“이걸 마을 회의에 그대로 공개할 수 있습니까?” 재하가 물었다.
“원본 그대로는 안 됩니다. 의료와 계약 관련 정보가 섞여 있어서요. 하지만 오류가 재현되는 조건은 익명화해 공개할 수 있습니다.”
우르센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야 우리 수로 조합도 직접 확인할 수 있겠네요. 전문가들이 괜찮다고 말하면 우리는 무슨 근거로 괜찮은지 물을 수밖에 없으니까.”
릴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계가 답을 잘못 냈으면 고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왜 이렇게 어렵죠?”
에반이 답했다. “잘못이라고 인정하기 전에 그 기계를 만든 사람도, 거기에 돈을 맡긴 사람도 자기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하거든. 몇몇은 돈을 잃는 게 두려워서 더 큰 손해가 났다고 해도 기계를 고치기 싫어해.”
“그러면 그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겠네요.”
“문제는 지금까지 그 사람들만 결정했다는 거야.”
그들은 보관소 밖 작은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네 사람에게 제공된 차는 천계의 규격 컵에 담겨 있었고, 컵 바닥에는 대금 자동 청구를 허용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재하는 마시려다 손을 멈췄다. 에반이 컵을 뒤집더니 웃었다.
“여기서 차 한 잔도 그냥 마실 수가 없나?”
“여기 차는 어디에 청구된대요?”
세리아는 확인 후 답했다. “참관인 공적 경비입니다. 별도 신앙 청구는 없습니다.”
“그걸 글씨를 제일 크게 써 줬으면 좋겠는데.”
우르센은 자리에 앉아 자기 동네 이야기를 했다. 홍수 때 수문을 닫아야 할지 열어야 할지 정하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상류 마을에서 보내는 물의 양과 하류 사람들의 곡식밭을 모두 확인해야 했다. 어느 날은 결정이 늦어 농지가 잠겼고, 어느 날은 빨리 내린 결정 때문에 하류 주택이 피해를 봤다. 그는 지금도 그때의 사람들에게 설명하러 다닌다고 했다.
“대표가 있다는 건 남들 몫까지 마음대로 결정하라는 허가장이 아닙니다.” 우르센이 말했다. “나중에 왜 그렇게 했는지 직접 설명하러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지.”
재하는 그 말을 그대로 수첩에 적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공동심의가 반드시 하나의 정답을 내놓아야 할까. 의견을 들은 뒤 무엇이 불확실한지 드러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가는 아무 일도 결정하지 못하는 회의만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럼 안건마다 누가 언제까지 책임지는지도 따로 적어야겠네요.”
우르센이 웃었다. “드디어 쓸 만한 회의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릴리는 종이에 동그라미 세 개를 그렸다. 의견을 낼 사람, 실제로 일을 할 사람, 결과를 확인할 사람. 겹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다고 표시했다. 에반은 그 그림을 보고 놀라듯 말했다.
“이거 천계 최고위직이 세 개로 나뉘어야 한다는 얘기 같은데?”
“그냥 노아가 숙제를 할 때 쓰는 방법인데요.” 릴리가 답했다. “숙제를 누가 할 건지, 누가 도와줄 건지, 누가 검사할 건지 다 다르잖아요.”
재하는 문득 웃었다. 천계가 수백 년 동안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행정 원칙이 초등 교육의 표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물론 법률에 옮기는 일은 훨씬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구분하는 데는 그만한 그림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 릴리가 물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점점 커지네요.”
“커졌죠. 처음에는 우리 신전 문턱만 고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후회하세요?”
재하는 멀리 마을을 바라봤다. 제6지역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는 종종 아무도 없는 회관의 의자들을 떠올렸다. 기계가 사람 대신 서명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의자를 조금 더 가져다 놓는 일과 닮아 있었다.
“후회는 안 해요. 대신 제 발목이 먼저 나갈 것 같아요.”
에반이 웃었다. “신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신앙이 아니라 편한 신발이었군.”
돌아온 일행은 신전 현관의 낡은 의자에서 잠시 쉬었다. 우르센은 수로 조합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기 지역 주민에게 보여 줄 설명문을 부탁했다. 재하는 시연 결과와 실제 발생한 사건을 분리해서 적었다. 이번에 본 것은 가능한 위험을 보여 주는 시연이지, 실제 환자의 사망 사고는 아니라고 명확히 썼다.
“모두가 사실대로 알아야 다음 결정도 제대로 할 수 있겠죠.” 우르센이 말했다.
릴리는 설명문 아래에 묻고 싶은 점을 적을 수 있는 칸을 만들었다. 재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답을 아직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질문 자체를 막을 이유는 없었다.
그때 누리가 통신판을 열었다.
[공동심의 청구 관련 추가 요건]
[필수 첨부: 이해관계자 중 신격 비소유자들의 독립 의견]
[제출 기한: 내일 정오]
우르센이 눈썹을 찌푸렸다. “신격 비소유자? 우리 같은 인간 말인가?”
“맞습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천계는 그들의 의견을 들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어요.”
재하가 종이를 접었다. “그럼 내일은 그 의견을 빠짐없이 들읍시다.”
“기한이 너무 짧아요.” 릴리가 걱정했다.
“짧은 게 문제라면 우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듣지 못한 사람은 듣지 못했다고 적죠.”
하늘 위에서 무기명 0호의 쇠빛 도장판이 천천히 돌아갔다. 사람의 말이 입력 항목이 되지 않는 한, 그 장치는 한 번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제3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