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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1화
PAYLUA ORIGINAL · 제1화

1화. 최강 마왕, 아기에게 패배하다

회귀한 마왕의 육아일기 · 11,181자

오프라인 책장
내 이름은 카르딘. 인간들은 나를 '멸망의 마왕'이라 불렀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니었다. 멸망이라니. 나는 세상을 없애려고 한 적이 없다. 그저 내 영토를 침범한 왕국 세 곳을 무너뜨렸고, 내 목에 현상금을 건 황제를 왕좌에서 끌어내렸으며, 하늘에서 내려와 내 백성들에게 불을 퍼붓던 천사들의 날개를 조금 꺾어 놓았을 뿐이다. 물론 인간들의 관점에서는 제법 심각한 일이었겠지. 아무튼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나는 죽었다. 그것도 스무 살 남짓한 인간 용사의 손에. *** 검은 왕좌가 부서져 있었다. 천장에서는 불타는 돌덩이가 쏟아졌고, 내가 삼백 년 동안 지켜 온 마왕성의 대전은 피와 재로 뒤덮였다. 열두 군단 중 살아남은 병력은 거의 없었다. 성벽 밖에서는 인간들의 승전가가 들렸다. 그리고 내 가슴에는 성검이 꽂혀 있었다. “끝났습니다, 마왕.” 내 앞에 선 청년이 말했다. 은빛 눈동자. 검은 머리칼. 왼쪽 어깨의 달 모양 흉터. 레온. 성왕국이 '빛의 선택을 받은 자'라 떠받들던 용사였다. “그런 표정으로 승리를 선언하는 놈은 처음 보는군.” 나는 피를 삼키며 웃었다. 레온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죄를 지은 사람처럼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왜 마지막까지 싸우신 겁니까?” “내 성에 찾아와 칼을 꽂아 놓고 이유를 묻는군. 인간다운 질문이야.” “저는…….”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무너지는 천장의 굉음에 나머지 말은 묻혀 버렸다. 성검의 빛이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뜨거운 것이 아니라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손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레온의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을 보았다. 증오가 아니었다. 슬픔이었다. 나를 죽인 놈이 왜 그런 눈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입을 열기도 전에 세상이 꺼졌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전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높은 천장. 흑요석 기둥. 아직 흠집 하나 없는 제국의 지도가 걸린 벽. 그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내 가슴이었다. 손바닥으로 눌러 보았다. 구멍이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전하,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침대 곁에 대악마 바르톨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놈은 분명 내가 죽던 날 오른팔을 잃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 팔이 멀쩡했다. 게다가 수염도 짧았다. “바르톨.” “예, 전하.” “오늘이 몇 년이지?” 놈은 잠깐 멈칫했다. “마계력 칠백팔십사 년, 흑월의 세 번째 날입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스무 해 전. 레온이 나를 죽이기 스무 해 전이었다. “거울을 가져와라.” 바르톨이 황급히 은거울을 내밀었다. 거울 속에는 젊어진 내가 있었다. 뺨의 흉터도, 마지막 전쟁에서 생긴 화상도 사라진 얼굴.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온전한 마력. 아직 배신하지 않은 육체. 다가올 전쟁의 전개까지 알고 있는 기억. 신이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인가? 우습군. 신들은 나를 누구보다 싫어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장난을 쳤든 상관없었다. 이미 결론은 정해졌다. 이번에는 내가 이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바르톨. 국경 북부의 인간 마을을 조사해라.” “정복 계획을 시작하시려는 겁니까?” “아니. 사람 하나를 찾을 거다.” “인간을…… 말씀입니까?” “아직 아기일 것이다. 은빛 눈을 가졌고, 왼쪽 어깨에 달 모양 흉터가 있는 아이.” 바르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찾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손안의 불꽃을 움켜쥐었다. 답은 뻔했다. 미래에 나를 죽일 존재라면, 강해지기 전에 없애면 된다. 마왕이란 원래 그런 계산에 익숙한 존재니까. *** 사흘 뒤, 나는 인간계 북부의 변경 숲에 있었다. 초겨울의 찬비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숲 바깥에는 전염병과 흉년 때문에 버려진 집들이 이어졌고, 진창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깊이 팬 채 얼어 가고 있었다. 성왕국 연대기에는 레온이 이 일대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었다. 미래에 읽었던 기록을 떠올려 마을을 하나씩 뒤졌다. 산파를 찾아보기도 하고, 출생 신고를 남긴 교회를 조사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레온의 출생 기록만 유독 지워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아이의 시작을 숨긴 것처럼. 나는 숲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짐승 새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부서진 짐수레 아래, 젖은 천에 싸인 작은 인간이 있었다. 아기의 입술은 추위에 파랗게 질려 있었고, 얼굴에는 마른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곁에는 식어 버린 우유병 하나와 끊어진 가죽끈이 놓여 있었다. 나는 천을 걷었다. 왼쪽 어깨. 작은 초승달 모양의 흉터. 그리고 눈을 뜨자 드러난 은빛 눈동자. “찾았다.” 미래의 용사. 나를 죽인 인간. 레온이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손바닥 위로 검은 화염이 피어올랐다. 한 번만 떨어뜨리면 된다. 고통도 없을 것이다. 불꽃이 몸에 닿기 전에 모든 것이 재가 될 테니까. 하지만 아기는 불꽃을 보더니 울음을 그쳤다. 작은 손이 움직였다. 내 손가락을 향해. “다가오지 마라. 위험한 것이다.” 물론 알아들을 리 없었다. 아기는 손을 뻗다가 허공을 몇 번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보고 웃었다. ……웃었다고? 세상의 군주들이 내 얼굴을 마주하면 무릎부터 꿇었다. 장수들은 내 앞에서 침을 삼켰고, 신관들은 신에게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이 작은 인간은. 침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웃는 것이냐?” “아우.” “나는 마왕 카르딘이다.” “아!” “네가 커서 죽일 상대라고.” “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에게는 아직 이도 없었다. 나는 불꽃을 거두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을 뻗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찬바람이 한 번 불자 아기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귀가 아플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였다. “시끄럽다.” 울음은 커졌다. “조용히 해라.” 더 커졌다. 나는 결국 아이를 들어 올렸다. 너무 가벼웠다. 내 검 한 자루의 무게에도 미치지 못했다. 품 안에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몰라 팔을 어색하게 벌렸더니 아이의 머리가 뒤로 기울었다. “이런.” 급히 손으로 받쳤다. 나를 죽일 검을 쥐었던 손이, 이번에는 나를 죽일 인간의 목을 받치고 있었다. 참으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나는 미래의 원수를 품에 안고 마왕성으로 돌아왔다. 복수는 잠시 미뤘다. 잠시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마왕성에 아기가 들어오자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적군이 보이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그만 울어라.” “으아아아아아!” “마왕의 명령이다.” “아아아아아!” 명령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왕좌에 앉아 레온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보랏빛 융단 한가운데 놓인 작은 요람에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울고 있었다. 용의 포효를 잠재우는 침묵 마법도 소용없었다. 마력을 너무 강하게 쓰면 아이의 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결계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전부터 같은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왜 우는가? 추운가 싶어 난로를 피웠다. 그래도 울었다. 빛이 거슬리는가 싶어 창문의 커튼을 쳤다. 더 크게 울었다. 혹시 요람이 마음에 들지 않나 싶어 왕실 장인의 요람보다 열 배 비싼 검은 수정으로 새것을 만들었다. 아이는 요람 위에서 토했다. 나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 생각보다 강하군.” “전하.” 문밖에서 바르톨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그가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갑옷에는 피 대신 흰 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다. 표정은 열두 군단이 괴멸했다는 보고를 할 때보다 비장했다. “긴급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쳐들어왔나?” “아닙니다.” “천계에서 움직였나?”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지?” 바르톨이 장부를 펼쳤다. “기저귀가 없습니다.” “……뭐?” “비축한 천 백 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나는 장부를 빼앗아 보았다. 어째서 마왕성의 군수 장부에 '기저귀'라는 항목이 있는 거지? “천 백 장이라니. 언제 그렇게 많이 썼단 말이냐?” “전하께서 아이가 울 때마다 갈아 주라 명하셨습니다.” “그랬지.” “그래서 지난밤 서른일곱 번 갈았습니다.” 나는 바르톨을 바라보았다. 놈은 진지했다. “그 정도면 천이 아니라 성벽을 두르는 편이 낫겠군.” “허락하신다면 마왕군 보급부에서 새 규격의 방수 장비를…….” “아기에게 갑옷을 입힐 셈이냐?” 바르톨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전하의 자녀라면 장차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장부를 탁 덮었다. “내 자녀가 아니다!” 그때 요람에서 울음이 멎었다. 나와 바르톨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레온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망울을 마주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방금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보호하고 있는 포로다.” “알겠습니다. 보호 중이신 포로께 기저귀를 보급하겠습니다.” “그 표현은 또 왜 그러느냐?” “전하께서 명명하셨으니까요.” 나는 눈을 감았다. 수백 년 동안 충성을 바쳐 온 부하를 처음으로 해고하고 싶어졌다. 바로 그때 문이 열렸다. “두 분 다 비켜 보세요.” 검은 메이드복에 흰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성큼 들어왔다. 미아. 마왕성의 생활을 책임지는 시녀장이었다. 전쟁이 나면 피란민 수천 명에게 식량을 배분하고, 평상시에는 악마들이 못 찾는 창고 열쇠를 찾아 주는 사람. 그녀는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부하이기도 했다. “아기가 배고픈 거예요.” “먹였다.” “언제요?” “한 시간 전.” “얼마나요?” “…….” 그 질문에는 답할 수 없었다. 병에 든 우유를 얼마나 먹였는지 기록하지 않았으니까. 미아가 빈 젖병을 들어 보였다. “전하. 이건 우유가 아니라 염소젖을 끓인 뒤 식히지도 않은 것이잖아요.” “독은 없었다. 내가 직접 감별했다.” “독이 없는 것과 아기가 먹기 좋은 것은 다릅니다.” “온도는 손에 견딜 만했는데.” “전하 손은 용암에도 멀쩡하잖아요.” 반박할 수 없었다. 미아는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깨끗한 젖병을 살폈다. 나는 그녀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적장을 사로잡은 후의 심문보다 훨씬 복잡해 보이는 작업이었다. “어찌 그리 잘 아는 것이냐?” “동생들이 여섯 명이었거든요.” “여섯?” “네. 막내는 제가 거의 키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명의 인간 아이를 살아남게 한 사람. 그렇다면 충분히 전문가였다. 미아가 레온을 품에 안았다. 신기하게도 울음이 잦아들었다. 나는 조금 불쾌해졌다. “나와 있을 때는 그렇게 울더니.” “전하께서는 아이를 들어 올릴 때 검을 뽑듯이 드시잖아요.” “그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다.” “아기 머리는 받쳐 주셔야 해요.” “숲에서는 받쳤다.” “그때는 잘하셨나 보네요.” 미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한마디에 어쩐지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칭찬 한마디에 기뻐한 건가? 이 몸이? *** 그날 오후, 나는 인간 아기의 생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바르톨이 가져온 두꺼운 책의 제목은 《초보 부모를 위한 육아 안내서》였다. '부모'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읽기로 했다. 첫 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기는 울음으로 자신의 필요를 표현합니다.' 나는 밑줄을 그었다. 전령을 쓰면 될 텐데. 다음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기를 안을 때에는 머리와 목을 반드시 받쳐 주세요.' 알고 있었다. 이미 숲에서 터득한 지식이다. 그다음 장. '아기가 잠들었다고 해서 항상 깊이 잠든 것은 아닙니다.' 이 대목은 중요했다. 나는 지난밤 레온이 잠든 줄 알고 대전으로 돌아왔다가 세 번이나 다시 불려 왔다. 책을 덮으려던 순간, 미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전하, 레온을 한번 안아 보시겠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아기가 전하 얼굴을 자꾸 보는데요.” 나는 요람을 바라보았다. 은빛 눈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고작 며칠 전에 데려온 아이였다. 그런데도 내 발소리를 기억하는 듯했다. “내가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 “아직 두려워할 이유를 모르니까요.” “그럼 내가 어떤 존재인지 가르쳐야겠군.” “안아 주시는 것부터 가르쳐 주세요.” 미아는 내가 거절하기 전에 레온을 넘겨주었다. 두 손을 어떻게 놓을지 잠시 고민했다. 오른손으로 머리와 목을 받치고, 왼팔로 작은 등을 감쌌다. 아기가 꿈틀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온몸의 힘을 굳혔다. “움직이지 마라. 떨어진다.” “전하가 움직이지 마세요.” “내가?” “네. 그렇게 긴장하시면 아기도 불편해요.” 나는 전쟁터에서만큼이나 신중하게 호흡했다. 레온의 손가락이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작게 하품했다. 작은 입. 감기는 눈꺼풀. 가벼운 숨.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하?” “조용히.” “왜 그러세요?” “잠들었다.” 미아가 웃었다. “그렇네요.” 나는 승리를 선언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가 다시 깨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마왕성의 지배자로서 두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바르톨이 국경 방어계획의 결재를 받으러 왔을 때도. 북부 영주가 공물을 바치러 왔을 때도. 심지어 천계의 정찰대가 서쪽 관문에서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도. 나는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하라.” 바르톨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비밀 작전 중이십니까?” “그렇다.” “작전명은 무엇입니까?” 나는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깨우지 마라.” 바르톨은 즉시 작전명을 장부에 적었다. 그날부터 마왕성의 모든 복도에는 새로운 명령이 붙었다. [특별 작전: 깨우지 마라.] [작전 구역 내 갑옷 소음 및 고성 금지.] 나중에 그걸 보고 기가 막혔지만, 적어도 성은 조용해졌다. *** 밤이 깊었다. 높은 창밖으로 마계의 두 달이 떠올랐다. 은빛 달은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고 붉은 달은 그보다 낮게 검은 숲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아이 방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레온은 작은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미아가 말하길, 아이는 깨끗한 천과 따뜻한 우유만 있으면 오늘 밤은 잘 잘 거라고 했다. 참으로 간단한 요구였다. 이 아이가 스무 해 뒤에는 성검을 들고 세상의 전쟁을 끝내는 영웅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미래의 마지막 전투를 되짚었다. 레온은 내 심장을 찌른 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긴 자가 어째서 슬퍼하는가? 하지만 지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과 원하는 것을 지키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문득 아이를 발견했던 숲이 떠올랐다. 찢어진 수레, 젖은 천, 식은 우유병. 그 아이를 그곳에 버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 하필 달 모양 흉터가 있는 아기를 홀로 남겨 두었을까. 성왕국 기록에는 레온이 '신의 인도로 발견된 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말이 갑자기 섬뜩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아기를 일부러 버려두고, 나중에 신이 구한 것처럼 꾸민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생각을 비웃었다. 증거도 없이 음모를 상상하는 건 늙은 귀족들의 습관이지, 내 취미가 아니다. 그러나 기억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죽기 직전 레온은 내게 묻고 있었다. '왜 마지막까지 싸우신 겁니까?' 그리고 그 이전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나는……. 무엇을 말하려던 것이었을까. “으응.” 레온이 몸을 뒤척였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의 이불이 발끝까지 밀려나 있었다. 그것을 다시 덮어 주려는데 작은 손이 내 검지를 붙잡았다. 따뜻했다. 이토록 작은 손으로 훗날 성검을 들었다니.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는 미래에 나를 죽인다. 그 사실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손가락을 잡은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네가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그걸 정할 권리가 정말 신에게 있는 것일까? 나는 손가락을 빼지 않았다. “레온.”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자라.” 한참 후, 나도 모르게 다른 말을 덧붙였다. “네가 무엇이 될지는…… 네가 자라서 정해라.” 그 말이 내 운명을 얼마나 바꾸게 될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 쾅! 새벽의 고요를 깨뜨린 것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나는 한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돌아보았다. 바르톨이었다. “전하! 긴급…….” “쉿.” “…….” “애가 잔다.” 바르톨은 자기가 수만 명의 병사 앞에서도 지어 본 적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삭였다. “성 밖에 신성 추적대가 도착했습니다.” “몇 명?” “열두 명입니다. 전부 성기사급 이상이며, 신관 하나가 동행했습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검은 숲 사이로 하얀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했다. 내 기억에 신성 추적대가 마계 북부까지 진입한 것은 레온이 열다섯 살이 된 뒤였다. 그것도 훗날의 대전쟁 직전이었다. 지금은 너무 빨랐다. “목적은?” 바르톨이 주저했다. “전하를 토벌하러 온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럼?” “아기 한 명을 찾고 있습니다.” 등골을 타고 찬 기운이 흘렀다. “특징은.” “은빛 눈동자. 왼쪽 어깨에 초승달 모양 흉터.” 나는 레온을 돌아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전하, 성기사들이 그 아이를 '신탁의 그릇'이라고 부릅니다.” 그릇. 사람의 이름이 아니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물건을 부르는 말이었다. 나는 조용히 검을 집어 들었다. “미아를 불러라. 아이 곁에 있게 해.” “전하께서는 어디로…….” “손님을 맞아야지.” *** 성문 밖의 공기는 칼날처럼 차가웠다. 열두 명의 성기사가 말에서 내려 진을 이루고 있었다. 하얀 갑옷에는 태양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의 뒤에는 성왕국의 금빛 깃발이 펄럭였다. 선두의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마왕 카르딘!”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듣는다.” “우리는 천상의 명령을 받들어 이곳에 왔다!” “새벽에?” 여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께서 선택하신 아이를 넘겨라!” “싫다.” “그 아이는 인간계를 구원할 운명을 타고났다. 마족의 손에서 자라선 안 된다!” 나는 웃었다. “운명이라.” 그 단어를 너무 많이 들었다. 내가 멸망할 운명이라는 말. 레온이 나를 죽일 운명이라는 말. 신의 뜻을 거부하는 자는 악이라는 말.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에게 벌써 세상을 구하라 명령했나?” “감히 신탁을 모독하는 것이냐?” “묻는 말에나 답해라. 그 아이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성기사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선택받은 자에게 개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스무 해 뒤, 레온이 왜 그토록 슬픈 얼굴로 서 있었는지.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들은 아이를 데려가 전사로 만들 것이다. 세상을 구원할 명분으로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가르칠 것이다. 어쩌면 내가 과거에 믿었던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라.” 내 말에 성기사들이 술렁였다. 여자는 검을 뽑았다. “그렇다면 신의 이름으로 그 아이를 회수하겠다!” 그 순간 하늘이 갈라졌다. 구름 사이로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떠올랐다. 순백의 빛으로 이루어진 눈. 나는 그 문양을 기억했다. 레온이 성검을 뽑던 날,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났던 신성의 표식이었다. 눈동자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언 개입자 확인.] [회수 대상: 은안의 유아.] [저항하는 보호자는 제거한다.] 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보호자라고?” 전생에 나는 폭군이었고, 정복자였고, 멸망의 마왕이었다. 누구도 나를 보호자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눈알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참으로 기묘한 기분이었다. “이름을 잘못 붙였군.” 나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하지만 네놈들이 하겠다는 일은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나는 땅 위에 검은 불꽃의 선을 그었다. 성문에서 백 걸음 떨어진 흙바닥이 붉게 녹아내렸다. “한 발만 더 들어오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여자가 이를 악물었다. “아이를 위해 싸울 셈이냐, 마왕!” 나는 대답하려 했다. 그때였다. 성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터졌다. “으아아아아아!” 나는 멈칫했다. 레온이었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보다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바르톨.” “예, 전하!” “저놈들이 선을 넘지 못하게 해라.” “전하께서는 직접 처단하지 않으십니까?” “급한 일이 있다.” “무슨 일이기에…….” 나는 망토를 휘날리며 성문 안으로 돌아섰다. “아기가 깼다!” 뒤에서 성기사의 고함이 들렸다. “도망치는 것이냐, 마왕!”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착각하지 마라! 젖병을 데우러 가는 것이다!” 전장에 어이없는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내게는 농담할 여유가 없었다. 레온의 울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하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급하게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쳤다. [경고. 예정되지 않은 선택 발생.] [대상 카르딘: 마왕.] [대상 카르딘: 유아의 실질적 보호자.] [예언의 인과 관계 충돌.] [미래의 용사는 예정된 시점에 마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잠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무슨 뜻이지? 내가 레온을 키우면 레온이 나를 죽이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이번 생에는 정말 다른 결말이……. [새로운 종말 시나리오 계산 시작.] 하늘 한가운데 붉은 빛이 켜졌다. 두 달 사이에 있어서는 안 될 세 번째 별이 떠올랐다. 거대한 핏빛 별.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낮게 웃었다. “좋아. 운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군.” 천계가 무엇을 꾸미든, 미래가 몇 번 뒤틀리든 상관없다. 이번만큼은 남이 정한 결말대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성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신들과의 싸움보다 당장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유가 아직 차갑다. ……빌어먹을. 나는 마왕이다. 그런데 오늘도, 아기 하나를 달래는 일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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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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