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뒤 전면 공개’라는 통지는 천계에 빠르게 퍼졌다. 처음엔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배송의 진실이 드디어 드러난다는 기대였다. 그러나 하린이 미리 확보한 시험 화면에는 거주지, 가족관계, 진료 기록, 거절서 원문까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저대로 내보내면 또 피해가 생깁니다.” 세아가 말했다.
“공개를 막으면 관리실은 우리가 진실을 숨긴다고 말하겠지.” 벤이 답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게 함정입니다.” 피엘은 탁자에 두 장의 종이를 놓았다. “필요한 자료는 공개하고, 개인의 삶은 보호하는 제삼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린은 긴급 보전 결정을 신청했지만 시스템이 답했다.
[소급 보전 불가. 총괄 원장은 완전한 형태로만 공개할 수 있음.]
서온이 문장 끝을 분석했다. [‘완전한 형태’라는 조건이 제0경로의 자동 정리와 같은 뿌리야. 잘라 내거나 가리면 위조라고 처리하도록 설계됐어.]
“그럼 한 글자도 가리지 말라는 소리야?” 토비가 물었다.
“원본을 가리는 대신 원본을 본 사람들이 모든 사람의 기록을 보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아가 답했다.
회의실 밖에서는 제6문의 로마가 직접 전송한 쪽지가 도착했다. 거기에는 원래의 거절서가 아니라 그 서류를 숨겨야 했던 이유가 적혀 있었다. 로마는 혼자 사는 친구를 돕기 위해 낯선 밤길을 함께 걸어 준 적이 있었다. 그 일이 영원한 구조 의무로 등록된 뒤부터는 매일 밤 마을의 모든 연락이 그녀에게 왔다. 그녀가 한 번 거절하자 식량 배급에 불이익이 생겼다.
“내가 누군가를 도운 건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평생 나를 묶는 밧줄로 쓰지 말아 주세요.”
피엘은 쪽지를 읽으며 로마의 이름을 모든 사람 앞에 띄우려 하지 않았다. 로마는 이미 공청회에서 공개 범위를 별도로 정하겠다고 말한 상태였다. 쪽지는 내용 확인에 필요한 사람에게만 보이도록 봉인했다.
벤은 옆 의자에 앉아 악마의 계약서를 두 장 펼쳤다. 하나는 상대방이 동의한 계약, 다른 하나는 침묵을 동의라고 적은 계약이었다. “둘 다 서명이 있긴 하지. 그런데 한쪽은 사람이 문장을 보고 직접 했고, 다른 쪽은 기계가 사람이 잠든 동안 찍었어. 겉모양이 같다고 같은 계약으로 취급하면 안 돼.”
세아는 이 논리를 개인정보에도 적용했다. 문서가 진본이라는 사실과 누구나 그 문서를 읽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달랐다. 원본의 존재를 여러 곳에서 증명하면서도 원문이 꼭 필요한 사람만 접근하도록 나누는 체계를 설계할 수 있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겠어?” 피엘이 물었다.
서온이 답했다. [완벽하진 않아. 누군가 잘못된 권한을 갖고 있으면 새 방식도 위험해져. 그래서 사용 기록을 남기고, 허가를 취소할 절차도 따로 둬야 해.]
“그럼 그 기록까지 보여 주세요.”
[좋아. 이번엔 나도 누군가 대신 결정했다고 나오기 싫어.]
그들은 두 개의 경로를 만들었다. 첫 번째는 사건 구조와 정책 변경 기록을 공개하는 요약 원장, 두 번째는 개별 당사자만 자신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봉인된 열람 창구였다. 두 문서가 같은 원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증명을 위해, 원본에 손대지 않은 상태로 독립된 세 곳에서 해시 표식과 금형 자국을 대조했다. 서온은 복제된 문서에 대해 원본의 위치와 언제 누구의 검증을 받았는지만 표기했다.
마르켈 측에서는 ‘원본 일체 공개’라는 표어를 거리 곳곳에 뿌렸다. 어떤 사람은 동의했다. “우리 기록인데 왜 보여 주지 않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울면서 말했다. “내가 거절한 편지를 이웃이 다 볼 필요가 있나요?”
피엘은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었다. 서로 다른 요구를 하나의 합의인 것처럼 적지 않았다. 그들은 공개 범위를 결정하는 임시 시민 협의회를 열었다. 마을 대표뿐 아니라 실제 오배송 피해자와 구조 현장 직원들이 참여했다. 회의가 길어지는 동안 자동 공개 시각은 가까워졌다.
에르다는 시민들 앞에 섰다. “저는 처음 안내 경로를 설계했습니다. 그 설계가 후에 명령을 강요하는 데 이용된 사실을 늦게 알았습니다. 어디서 제가 판단을 잘못했는지도 공개하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병원 기록까지 함께 공개해야 제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이 손을 들었다. “자료실에 있는 사진 한 장도 당사자와 마을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습니다. 누가 찍었는지 밝히는 일과, 사진에 있는 사람의 사생활을 파는 일은 다릅니다.”
사일은 조망실을 떠난 뒤 처음 공개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낡은 명찰을 벗어 탁자에 놓았다.
“저는 관리실의 명령을 따랐고,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록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확인할 시간을 주십시오.”
공개 시작까지 삼십 분이 남았다. 갑자기 제8문 창구에서 소식이 왔다. 서로가 작은 화면 앞에서 숨을 골랐다.
[새로운 강제 발송이 생겼어. ‘개인정보 공개를 거절하면 오배송 구제 신청도 거절한 것으로 처리한다’는 문장이야.]
제6문 로마에게도 같은 통지가 갔다. 그녀는 거절서를 들고 진료소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구제를 받으려면 내 거절서를 모두에게 보여 줘야 한다고 합니까? 난 그렇게 동의하지 않았어요.”
하린은 그 진술을 즉시 기록했다. 피엘은 서온에게 해킹이나 명령 삭제가 아니라, 공고를 내보낼 장치의 물리적 위치를 찾아 달라고 했다.
[제1문 지하 인쇄실. 통제권은 마르켈의 명의가 아냐. 완전성 관리 준비위원회 원본 직인이 열쇠로 쓰이고 있어.]
“원본 직인?” 에르다가 되물었다. “방앗간 사진에 찍힌 그 도장 말이군요.”
[맞아. 그런데 도장을 들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기록에 없어.]
피엘은 시계를 봤다. 이십칠 분. 장부를 숨기는 일도 사람을 희생시키는 공개도 선택하지 않기 위해 움직일 시간이었다.
제18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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