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마지막 정산이 중단된 지 일 년이 지났다.
그사이 왕도에서 모든 굶주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비가 오래 내린 해에는 밀이 부족했고, 운송로가 끊기면 작은 마을의 공동 주방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장부에 곡식이 있다고 적었다는 이유만으로 없는 식량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에 얼마나 남았는지, 누가 실제로 공급했고 누가 아직 받지 못했는지를 따로 확인하는 일이 왕국의 새로운 규칙이 되었다.
아일린은 대관식을 서두르지 않았다. 왕실의 부채를 공개하고, 왕실 창고의 복구 비용과 실종 요리사들의 피해 보상 예산을 따로 정했다. 독립된 조사단은 의전국과 식량안정위원회의 책임을 조사했다. 베이른은 자신의 역할을 증언하고 직무에서 물러났다. 발테르와 리데아도 자료를 제출했고, 그들이 실제로 저지른 행위에 대한 판단을 기다렸다.
아일린에게는 책임을 인정한다고 나라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 회의실에서는 매일 새로운 숫자가 올라왔다. 어느 마을에는 곡식이 모자라고, 어느 항구에서는 창고 수리가 늦어졌다. 하지만 누군가 사라진 음식을 이미 먹었다고 적는 문제만큼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정식 대관을 다시 논의한 날, 의회는 제7의자를 왕실의 의전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아일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의자는 왕실이 차지할 물건이 아닙니다. 아직 식사를 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비워 둬야 해요.”
결국 첫 겨울의 작은 부엌은 왕궁 지하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원하면 방문할 수 있는 기록 공간으로 바뀌었다. 세른이 남긴 조리 기록은 보호했고, 개인의 증언은 본인이나 유족이 허락한 범위에서만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마르타는 북부 루덴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더 이상 밤새 반죽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끔 학교의 아이들에게 빵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지만, 일하고 싶지 않은 날에는 가게 문을 닫았다. 이벨은 동부 온실에 작은 방을 얻어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가꿨다. 손바닥에 남았던 표식은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누가 허락 없이 만지려 하면 여전히 크게 화를 냈다.
타린은 다시 저울을 만들기 시작했다. 옛날처럼 사람에게 정해진 분량을 강요하려는 물건이 아니라, 실제 무게를 정확히 보여 주는 평범한 저울이었다. 그녀가 만든 첫 저울의 손잡이에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틀렸다면 다시 재면 된다.]
살아 돌아온 다른 여덟 요리사 역시 각자 다른 선택을 했다. 가족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있었고, 한동안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지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여섯 명의 희생자에게는 가족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어느 누구도 왕실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다.
새 왕실 규정이 내려온 뒤에도 식량 분쟁은 일어났다. 그러나 식당 벽에 걸린 장부에는 앞으로 얼마를 공급하겠다는 약속만큼이나, 지키지 못한 약속을 어떻게 정정할지 적혀 있었다. 한 마을에서 식량이 늦게 도착하면 다른 마을의 공급 실적에 몰래 합산하지 않고, 피해를 입은 마을에 이유와 새 일정을 알리게 했다.
도현은 이 규정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자신이 위대한 조리법을 발명했다고 떠들지도 않았다. 그는 어릴 적 배우던 주방 안전 수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냄비가 넘치면 불을 낮추고, 재료가 상했으면 버리고, 주문을 잘못 들었다면 손님에게 다시 확인한다. 화려한 마법보다 이런 확인이 사람을 지키는 때가 많았다.
에스텔은 간혹 식당을 찾는 마녀들에게 저주 해제 기술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제 치료사의 몸으로 저주가 옮겨갈 수 있다는 위험을 가장 먼저 설명했다. 원하는 사람만 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고, 저주를 다룰 수 없는 사람에게 영웅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브론은 그 강의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 매번 질문했다.
“혹시 손님이 수프를 다 안 먹으면 저주도 반만 오나요?”
“그런 계산은 하지 마!” 에스텔이 소리쳤다.
“그러니까 먼저 물어보는 거잖아요!”
도현은 두 사람의 말싸움을 들으며 웃었다. 예전이라면 걱정 때문에 웃지도 못했을 질문이었다. 이제는 모른다고 인정하고 기록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자체가 변화였다.
그해 가을, ‘마지막 한 숟갈’의 주방에도 변화가 생겼다. 문 위에는 새 간판이 걸렸다.
[오늘의 식사. 값은 메뉴판에 적힌 만큼. 저주 치료는 상담과 동의 후 별도 결정.]
브론은 간판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마법 같은 느낌이 하나도 없는데요.”
“원래 메뉴판은 맛과 가격을 알리는 물건이에요.” 도현이 대답했다.
“그럼 저주받은 식당은 이제 유명해지기 어렵겠군요.”
“맛있는 식당으로 유명해지면 되죠.”
도현은 여전히 왼손의 많은 부분을 움직이지 못했다. 석화의 진행은 원계약이 해제된 뒤 멈췄고, 의원과 마녀들이 오래된 저주를 조금씩 풀어 보는 치료를 이어 가고 있었다. 다만 즉시 원상회복될 거라고 누구도 약속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끓여 주던 미역국의 맛도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괴로웠다. 왕국을 붙잡던 장치를 멈췄는데도 자신의 손과 기억이 돌아오지 않다니, 긴 여행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언제부터인가 음식을 만드는 일을 다른 사람과 나누게 되었다. 헥터가 불을 보고, 니아가 재료를 다듬고, 브론이 손님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물었다. 도현은 오른손으로 조리법을 적고, 다른 사람들이 맛을 확인하면 그에 맞춰 다시 조절했다.
그날 저녁에는 첫 손님이었던 노인이 찾아왔다. 예전에 돌처럼 굳어 있던 손가락은 이제 지팡이 손잡이를 편안하게 잡고 있었다. 노인은 손수 만든 작은 나무 숟가락을 내놓았다.
“내 손으로 깎았네. 그때는 내가 다시 이런 일을 할 줄 몰랐어.”
도현은 숟가락을 받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가볍게 흔들어 보고 무게중심을 맞췄겠지만 지금은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쥐었다.
“정말 멋지네요.”
“그때 내 저주가 자네에게 옮겨갔다는 걸 늦게 알았네.” 노인이 말했다. “미안해서 다시 찾아오기가 어려웠어.”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이 제게 옮기라고 부탁하신 게 아니잖아요. 그때 제가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제대로 알았어야 했는데, 저도 몰랐습니다.”
노인은 쉽게 웃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 주게.”
“가끔 오셔서 식사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에 저희가 만든 음식이 너무 짜면 말씀해 주시고요.”
“그건 어렵지 않겠군.”
이어 오래전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던 소녀가 문을 열었다. 이제는 조금 자라 식당 간판에 손이 닿을 만큼 키가 커졌다. 그녀는 작은 바구니에 빵을 담아 왔다.
“그날 아저씨가 만들어 주셨던 빵이랑 비슷하게 만들었어요. 엄마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요.”
도현은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버터와 꿀 냄새가 났다. 그는 빵을 조금 떼어 먹었다. 달콤함을 완벽히 느끼지는 못했지만 결이 부드럽고 겉면이 잘 구워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대단한데. 다음에는 설탕을 조금 줄여 보자.”
“아저씨, 맛이 다 느껴져요?”
도현은 잠깐 망설였다. “전처럼 다 알지는 못해. 그래서 다른 사람 의견도 들어야 해.”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브론과 니아에게 빵을 나눠 주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의견을 냈다. 브론은 달아야 맛있다고 했고, 니아는 버터 향이 더 나면 좋겠다고 했다. 도현은 두 의견을 적었다.
주방 한쪽에서 에스텔이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식당 주인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지 않았다. 원본을 숨겼던 일에 관해 조사를 받았고, 피해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자료를 제공했다. 일부는 그녀와 말하고 싶지 않아 했고, 에스텔은 그 뜻을 존중했다. 도현과의 관계도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함께 일할 때 서로에게 필요한 설명을 빼먹지 않았다.
“오늘 메뉴는 뭐야?” 에스텔이 물었다.
“감자수프와 구운 빵이요. 저녁에 추워질 것 같아서.”
“마녀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너무 평범한 거 아니야?”
도현이 웃었다. “평범한 저녁을 먹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가 제일 잘 알잖아요.”
식당에는 손님이 늘어났다. 값비싼 옷을 입은 귀족도, 장터에서 돌아온 노동자도, 여행에서 막 도착한 아이도 있었다. 누구는 작은 그릇을 원했고, 누구는 빵을 두 조각 더 달라고 했다. 먹지 않겠다는 손님은 그대로 돌아갔다. 남겼다는 이유로 내일의 빚이 생기지 않았다.
브론이 마지막 손님에게 다가갔다. 낡은 망토를 쓴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메뉴판을 읽다 고개를 들었다.
“여기 정말 저주를 풀어 주는 식당인가요?”
브론은 잠깐 입을 열었다가 도현을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제는 누가 어떤 저주를 가졌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은 채 약속할 수 없었다.
도현이 주방에서 나왔다.
“상담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무조건 풀린다고 약속하지는 않아요.”
여성은 조금 망설였다. “그럼 오늘은 그냥 저녁만 먹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무엇을 드시겠어요?”
그녀는 수프를 골랐다. 도현은 오른손으로 주문표에 적었다. 브론은 주방으로 들어가 불을 조절했고, 니아는 채소를 조심스럽게 썰었다. 헥터는 국물을 끓이는 동안 솥 바닥을 저었다.
잠시 뒤 따뜻한 수프가 나왔다. 여성은 한 숟갈을 먹고 어깨를 조금 내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추운 바깥에서 오래 걸어온 사람이 따뜻한 음식을 만났을 때의 표정이었다.
“맛있네요.”
“다행입니다.” 도현이 말했다.
모든 그릇이 비워진 뒤 브론이 계산을 마쳤다. 마지막 접시 하나는 사용하지 않은 채 선반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 늦게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몫을 이미 먹었다고 장부에 적는 사람은 없었다.
도현은 불을 끄기 전에 다시 한번 식당을 둘러보았다. 세른의 낡은 숟가락, 벽에 걸린 새 메뉴판, 마르타가 보내 온 빵 상자, 방명록에 남겨진 평범한 감사 인사. 모두가 저주보다 오래 남았으면 하는 것들이었다.
브론이 물었다. “주방장님, 이제 정말 끝난 겁니까?”
도현은 잠깐 생각했다. 왕국에는 내일도 식사가 필요할 것이다. 세상 어디에선가는 새로운 저주가 생길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픈 손을 고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부터 붙잡고 있던 거짓 계약은 끝났다. 기다리던 사람의 몫을 누군가 대신 먹었다고 선언하던 세계도 끝났다.
“오늘 장사는 끝났죠.” 도현이 말했다.
“내일은요?”
“내일은 다시 열어야죠.”
브론이 웃으며 간판의 불을 내렸다.
마지막 한 숟갈.
이제 그 이름은 누군가가 모든 저주를 끝까지 삼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가장 늦게 온 사람에게도 한 숟갈을 남겨 두겠다는, 작고 평범한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니라, 내일도 함께 부엌에 서는 사람들의 손으로 지켜질 것이었다.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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