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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화
PAYLUA ORIGINAL · 제1화

1화. 저주는 손님이 아니라 요리사에게 남는다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6,128자

오프라인 책장
백도현은 요리사가 된 뒤 처음으로 자신의 음식 때문에 손님이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을 보았다. “맛없습니까?” 그가 물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렇게 맛있는 수프는 처음 먹어 봐.”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스푼을 다시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가락이 돌처럼 굳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도현은 슬쩍 노인의 손을 쳐다보았다. 회색으로 변했던 손가락 끝에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어르신, 손 괜찮으세요?” “이게… 움직이네.” 노인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몇 해 동안 굳어 있었는지 마디마다 깊은 금이 남아 있었다. 그의 눈물이 수프 그릇에 한 방울 떨어졌다. 그 순간 도현의 왼쪽 손목이 싸늘해졌다. 쩍. 아주 작은 돌이 갈라지는 소리였다. 그는 재빨리 소매를 내렸다. 손목에 회색 반점 하나가 생겨 있었다. 노인이 잃은 저주가 어디로 갔는지 도현은 아직 몰랐다. 그러나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 식당 첫 정식 손님이네요.” 주방 문에 기대 선 여자가 말했다. 은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마녀 에스텔이었다. 그녀는 검은 앞치마에 커다란 밀가루 손자국을 묻히고 있었다. 마녀라는 단어와 앞치마가 이렇게 안 어울릴 줄은 몰랐지만, 이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흔했다. “첫 손님이라뇨. 오늘 낮에도 네 명이나 왔는데요.” “그 사람들은 빚쟁이랑 세금 징수관이었잖아.” “그럼 그릇 깨뜨리고 도망간 늑대인간은요?” 주방 뒤에서 누군가 항의했다. “저는 직원입니다!” 털북숭이 늑대인간 브론이 고개를 내밀었다. 커다란 귀가 축 늘어져 있었다. 도현은 그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직원이면 그릇값 월급에서 공제 안 하게 조심해요.” “사장님은 원래 그릇이 저주받아서 스스로 깨지는 거라고 하셨는데요.” “그게 더 큰 문제죠.” 도현은 수프 냄비를 씻었다. 이곳은 왕도 뒷골목에 위치한 작은 식당 ‘마지막 한 숟갈’. 간판에 쓰인 이름부터 불길했지만 도현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원래 한국에서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의 수셰프로 일했던 그는 비가 쏟아지던 밤,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골동품 주방 문을 열었다가 이곳으로 떨어졌다. 이세계 최초의 장면이 거대한 마법진이나 용의 공격이 아니라 설거지 산더미라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황당했다. “당신은 요리를 할 줄 알아?” 에스텔이 처음 물었을 때 도현은 자존심을 걸고 대답했다. “제가 만든 소스 때문에 손님이 비행기를 타고 온 적도 있습니다.” “그럼 여기선 소스 때문에 손님이 저주를 풀러 오겠네.” 그는 그 말을 농담으로 들었다. 그러나 식당 안의 모든 음식에는 작은 마법이 깃들었고, 손님의 저주에 맞는 음식을 만들면 실제로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왜 하필 음식인가요?” 도현이 묻자 에스텔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저주는 누군가의 몸과 마음에 자리를 잡아. 몸이 가장 쉽게 받아들이는 건 약도 주문도 아니라 매일 먹는 음식이지.” “그럴 듯한 얘기네요.” “문제는 하나 있지.” 그때 에스텔은 웃고 있었다. “저주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자리를 옮기는 거지.” 도현은 그 말의 의미를 묻지 못했다. 그날 저녁 노인의 수프가 첫 번째 답이 되어 돌아왔다. 첫 번째 손님이 떠난 뒤 도현은 그가 남긴 동전 세 개를 세어 보았다. 동화 두 닢과 은화 하나였다. 손을 쓸 수 있게 된 노인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식당 문을 나선 뒤에도 손가락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도현에게는 그 모습이 기뻤다. 병원에서 환자가 나았다고 말하던 의사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 수프는 왜 그렇게 만들었어?” 에스텔이 물었다. 도현은 조금 놀랐다. 그녀는 저주의 원리를 설명하기보다 결과만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래 끓여야 하는 뼈 국물 대신 채소를 볶아서 맛을 냈습니다. 노인이 손을 제대로 못 쓰니까 씹기 편하게 재료를 잘게 썰었고요.” “그게 이유야?” “손이 굳은 분한테 뼈 붙은 고기 내놓으면 힘들잖아요.” “저주에 맞춘 재료가 아니라 손님의 생활에 맞춘 거구나.” 에스텔은 이상한 눈빛으로 냄비를 바라봤다. “왜요?” “이 식당의 전임 요리사들은 저주 목록부터 읽었거든. 돌이 된 손에는 달맞이풀 세 잎과 검은 버섯 다섯 개를 썼지. 그런데 넌 그걸 하나도 안 넣었어.” 도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재료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재료를 미리 정해 놓으면 맛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에스텔의 눈이 커졌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법 조리법을 무시하고 맛을 먼저 생각한 요리사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려 묻고 있었다. “내일 같은 손님이 오면 뭘 만들 건데?” “같은 손님은 없죠. 먹는 사람이 다르잖아요.” 그녀는 무언가 깨달은 듯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 한동안 식당 창고를 뒤졌다. 흰 유리병과 검은 유리병을 꺼냈다가 다시 넣기를 반복했다. 도현은 식기를 닦으며 손목의 반점을 다시 확인했다. 반점은 원형이었다. 심하게 아프거나 쑤시지는 않았다. 다만 차가운 수증기가 손목 안쪽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노인의 손이 굳어 있던 자리에 생긴 저주라면 자신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날까.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봤다. 지금은 멀쩡했다. 브론이 다가와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손님들이 주방장님께 감사 인사를 남길 수 있게 방명록을 만들면 어떨까요?” “왜 갑자기요?” “그 노인분이 다시 오신대요. 이곳 식당이 문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도현은 잠깐 손을 멈췄다. 음식으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이 이 세계에서도 가능하다면,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조금은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손목에 남은 차가운 감각이 그 생각을 단번에 꺾었다. “방명록 좋네요. 하지만 먼저 메뉴판부터 만들죠.” “메뉴판이 왜요?” “가격이 없잖아요. 지금까지 손님들한테 얼마씩 받았어요?” 브론이 장부를 뒤적였다. “에스텔 사장님 기분에 따라서….” 도현은 이마를 짚었다. “이 식당은 저주가 아니어도 망하게 생겼군요.” 폐점 직전, 두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낡은 망토를 두른 어린 소녀였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창백했고, 신발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 브론이 문 앞에 나가 길을 막았다. “가게 마감했습니다. 내일 오세요.” “먹을 게 필요해요.” “지금은….” 도현이 손짓했다. “들여보내요. 남은 식재료로 뭘 만들 수 있어요.” 소녀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에스텔은 계산대 뒤에서 그녀를 한참 지켜보았다.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뭘 먹고 싶니?” 도현이 물었다. 소녀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요.” “어떤 음식인데?” “따뜻한 빵이요. 안에 달콤한 게 들어 있었어요. 엄마는 손으로 찢어서 저한테 줬어요.” 도현은 남은 밀가루와 버터, 꿀을 확인했다. 이세계 밀가루는 질감이 달랐고 오븐은 조절이 어려웠지만 만드는 건 가능했다. “이름은 모르지만 비슷하게 만들어 볼게.” 그는 반죽에 버터를 접어 넣었다. 열에 약한 마법 가루가 섞이면 식감이 이상해지기에 에스텔의 허락을 받고 약한 불만 사용했다. 주방은 곧 구운 버터와 꿀 냄새로 가득 찼다. 소녀가 코를 킁킁거렸다. 브론도 입맛을 다셨다. “직원 간식은 없나요?” “손님 거예요.” “저도 가끔 손님이 될 수 있는데….” 도현은 작게 웃었다. 소녀는 한입을 베어 물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이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슴께에서 검은 실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빵의 향기를 따라 꿈틀거리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에스텔이 뛰쳐나왔다. “도현, 손 떼!” 너무 늦었다. 검은 실이 도현의 손목에 감겼다. 차가운 바늘이 피부 아래로 들어오는 감각이었다.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손목의 회색 반점이 손등으로 번졌다. 소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마….” 누군가 방금 귓가에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소녀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기억이 갑자기 돌아온 것이다. “엄마 이름이 생각났어요!” 소녀의 눈에 빛이 돌았다. 반면 도현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 주던 미역국의 맛. 방금 전까지 선명했던 그 맛이 점점 흐려졌다. 혀끝에 남아 있던 짭조름한 기억이 빈자리가 되었다. “에스텔 씨.”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게 대체 무슨 저주예요?” 마녀는 소녀가 듣지 못하도록 주방 문을 닫았다. “그 아이의 저주는 기억을 먹는 거야. 음식이 오래된 기억을 깨웠고, 저주는 네게 옮겨갔지.” “그럼 제 기억을 계속 잃는 겁니까?” “저주에 따라 달라.” 에스텔은 도현의 손목을 확인했다. “아직 두 개니까 버틸 수 있어.” “두 개?” “아까 노인의 석화 저주 하나, 지금 기억을 먹는 저주 하나.” 도현은 의자를 끌어당겨 주저앉았다. “그럼 이런 식으로 계속 요리하면….” “언젠가는 네 몸에 저주가 가득 차겠지.” 그제야 도현은 식당 이름을 이해했다. 마지막 한 숟갈. 마지막까지 모든 저주를 삼킨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그는 묻고 싶지 않았다. “왜 미리 말 안 했어요?” 에스텔은 드물게 시선을 피했다. “말했잖아. 자리를 옮긴다고.” “그게 제 몸이라는 말은 안 했잖습니까.” 대답 대신 마녀는 낡은 장부를 꺼냈다. 첫 장에는 이 식당에서 일했던 요리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 지워져 있었다. “여기서 요리했던 사람들은…?” “그만두기도 했어.” “나머지는요?” “요리를 못 하게 됐지.” 도현은 장부를 덮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이라도 도망칠 수 있었다. 돈도 모으지 못했고 이 세계에 지인도 없었지만 목숨은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계산대 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소녀가 빵 부스러기가 묻은 손으로 인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잊었던 어머니의 이름을 여러 번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작은 소리가 어찌나 밝은지 도현은 쉽게 문을 나설 수 없었다. “에스텔 씨. 저주를 옮겨 받지 않는 방법은 없습니까?” “있었다면 내가 벌써 했겠지.” “없다고 확정된 건 아니군요.” 에스텔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뜻이야?” “요리에는 조리법이 있습니다. 재료가 같아도 과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요. 저주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는 손목의 반점을 가리켰다. “들어오는 길이 있으면 빠져나가는 길도 있을 겁니다.” 에스텔이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식당 바깥에서 마차 소리가 들렸다. 창문 앞에 검은 왕실 마차가 멈춰 섰다. 문장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브론은 냄새를 맡더니 귀를 바짝 세웠다. “왕실 사람입니다. 그런데… 피 냄새가 안 나요.” “피 냄새가 없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왕실 호위인데 살아 있는 냄새가 안 난다고요.” 마차에서 하얀 장갑을 낀 여성이 내렸다. 얼굴을 가린 베일 아래로 귀한 장신구가 보였다. 그녀는 문 앞에서 장갑을 벗었다. 손등에 검은 왕관 모양의 저주가 새겨져 있었다. 에스텔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일린 공주.” “오랜만이군요, 에스텔.” 공주는 식당에 들어서며 나직이 말했다. “왕궁의 연회에 낼 음식을 부탁하러 왔어요.” “저는 왕궁에 갈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니라 새 요리사를 찾으러 왔습니다.” 공주의 시선이 도현에게 꽂혔다. “백도현 씨. 사람 하나의 저주를 빼앗았다고 들었어요.” “두 사람인데요.” 순간 공주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좋군요. 왕국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장갑을 완전히 벗었다. 왕관 모양의 저주가 갑자기 움직였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검은 가지가 뻗으며 식당 천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현의 손목에 있던 두 반점이 동시에 뜨거워졌다. 에스텔이 처음으로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도현. 그 손님 음식은 만들지 마.” 공주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죠? 제 저주도 식사 한 번이면 해결되는 것 아닌가요?” 에스텔이 낮게 속삭였다. “저건 한 사람의 저주가 아니야.” 도현의 눈앞에 글씨가 떠올랐다. 그가 처음 이 식당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었다. [손님에게 깃든 저주: 왕국의 식탁.] [저주를 품은 인원: 183,442명.] [저주를 옮길 요리사의 현재 수용 한도: 2명.] 도현은 입안이 말라붙는 것을 느꼈다. 공주는 조용히 웃었다. “이제 제게도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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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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