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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69화
PAYLUA ORIGINAL · 제169화

169화. 감정대가 사람을 감정할 때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199자

오프라인 책장
심사 당일, 루멘 경매장의 붉은 융단은 절반만 깔렸다. 객석 앞의 나머지 공간에는 둥근 작업대 세 개와 견고한 유리 칸막이가 놓였다. 원래는 고가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공개 감정 심사장으로 사용됐다. 장비 하나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중앙홀을 메웠다. 기자, 항만 구조조합원, 감정사, 기술관, 이름과 권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던 시민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앉아 있었다. 진혁은 시작 전에 벨라의 접수대를 찾았다. 방청인 명단이 지나치게 길었다. 출입구 두 곳에는 경비가 배치됐지만 대피용 측면 복도는 비워져 있었다. “괜찮아요?” 벨라가 물었다. “심사보다 사람 많은 게 더 무서운데요.” “그럼 표정 좀 풀어요. 시민들이 당신 얼굴 보고 더 겁먹겠어요.” 진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벨라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더 무서워요.”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이상한 날에도 경매장이 평소처럼 돌아가는 사실이 마음을 붙들어 줬다. 공개 감정 심사는 세리아가 주재하고 왕도 기록청의 하서린이 입회했다. 기술 검증은 오렐과 노해린이, 계약 문서 비교는 카렌과 공증인 윤상화가 맡았다. 왕립정리위원회의 에르딘은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했고, 민도겸은 물품 제시 순서를 읽었다. 어느 한쪽이 단독으로 모든 절차를 쥐지 못하도록 역할을 나눈 것이다. 단상 위 상자에는 ‘제0호 임시 감정대’라는 금속판이 붙어 있었다. 표면은 매끄럽고 값비싼 장치처럼 보였지만 손잡이 아래의 나사에는 최근 교체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진혁이 감정대 앞으로 나서자 에르딘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 감정사님은 물건의 본질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치에 정당한 가격을 매기는 것도 가능하겠죠.” “가격부터 정하기 전에 소유권과 작동 목적을 밝혀야 합니다.” “그건 심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확인됩니다.” “제가 심사에 참여하면 장치가 제 신원을 기록한다는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잖습니까.” 객석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에르딘은 잠시 미소를 잃었다. “그런 기능이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오렐이 별도의 시험 장치를 들어 올렸다. 백색 등대에서 확보한 어댑터와 균열 유리갓으로 만든 비교 장치였다. 그의 설명은 어렵지 않았다. 원래의 제0호 시스템은 응답의 출처를 확인하되, 누가 본인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 거절을 독립적으로 남기도록 설계됐다. 반면 임시 감정대에는 응답 여부와 상관없이 앞에 선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회로가 추가돼 있었다. “이 두 선의 차이입니다.” 오렐은 사람들에게 선을 보여 주었다. “원래는 ‘이 사람이 직접 동의했는가’를 묻지만, 바뀐 장치는 ‘이 사람의 이름이 들어왔는가’만 확인합니다.” 진혁은 일부러 손바닥을 장치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사전 동의를 받은 검증인 한 명이 기계식 시험 표식을 넣었다. 표식에 적힌 글자는 ‘거절’이었다. 장치는 짧게 울리고 서류를 뱉었다. ‘확인 완료. 임시 감정인 지정.’ 객석 뒤에서 누군가 욕설을 내뱉었다. 카렌은 바로 문서를 봉인했다. 이것은 과거 범죄의 전체 증거는 아니었지만, 지금 제시된 장치가 신청인의 의사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보여 줬다. 에르딘이 손을 들었다. “시험 표식이 실제 사람의 의사를 대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진혁이 답했다. “그래서 이 장치가 사람의 의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셔야죠.” 작은 박수가 터졌다. 그러나 세리아는 박수를 오래 두지 않았다. 아직 장치가 왜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누가 설치했는지, 원래 루멘의 심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모두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 순서에서 에르딘은 등대 기록 보조 류이든의 증언을 문제 삼았다. 그가 며칠간 불법적으로 폐등대에 머물렀으니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이든은 긴장했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구조 당시의 수위 기록, 손목과 발목의 상처, 수리선 선장의 항행 일지, 그가 적어 둔 방문 선박 번호를 차례로 제출했다. “제가 그곳에 무단으로 들어간 건 맞습니다.” 이든이 말했다. “그 일은 책임지겠습니다. 하지만 등대를 몰래 고친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진혁은 이든을 바라봤다. 이든은 완벽한 영웅도, 아무 흠 없는 증인도 아니었다. 그 점이 오히려 믿을 만했다. 잘못한 일과 알아낸 사실을 분리해 말하려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증언이 끝난 뒤에도 객석은 곧바로 조용해지지 않았다. 구조조합의 은비가 방청석에서 일어나 자신들이 겪은 사고 기록을 제출했다. 백색 등대 부근에서 조난 신호가 사라졌던 세 차례의 시간과 제0호 접수기의 회신 예정 시각이 일부 겹쳤다. 그렇다고 장치가 사고를 일으켰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신호 오류가 바다의 구조 활동을 방해했을 가능성은 조사할 가치가 있었다. “저는 누가 책임자인지 당장 결정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은비가 말했다. “내일도 그 수로에서 구조선을 몰아야 합니다. 어떤 신호를 믿고 어떤 신호를 의심해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민도겸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망치를 바라봤다. 그는 오래 경매를 진행해 왔다. 입찰이 끝나면 물건의 주인이 바뀌고 수수료가 정해진다. 그런데 지금 단상에 올라온 장치 하나에는 판정이 늦어질수록 누군가가 위험해지는 문제가 얽혀 있었다. 그는 진행자로서 손님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 애썼지만, 이 자리에서는 서두르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이었다. “판정 시간을 연장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방청인에게는 현재 확인된 사실과 조사 중인 사안을 따로 안내하겠습니다.” 에르딘은 곧장 항의했다. “이러면 심사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아닙니다.” 민도겸이 대답했다.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는 게 경매의 가장 기본적인 일이니까요.” 세리아는 그를 잠깐 놀라운 눈으로 보았다. 모든 사람이 자기 편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한 가지 원칙에는 다수가 동의하고 있었다. 카렌은 진혁 옆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괜찮아요?” “제가 여기까지 와서 무얼 바꾸었나 생각 중이에요.” “적어도 사람들이 당신 대신 서명할 수는 없게 만들었죠.” “그런데 아직 장치가 남아 있어요. 저 사람들은 또 다른 서류를 가져올 수도 있고.” 카렌이 그의 손등 위에 손가락을 가볍게 올렸다가 떼었다. “그러면 다음에도 확인하면 됩니다. 오늘 모든 걸 끝낼 필요는 없어요.” 그녀는 아버지 레온의 마지막 행적을 찾는 동안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했다고 덧붙였다. 언제나 진실을 바로 얻고 싶지만, 급하게 얻은 결론이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칠 수도 있었다. 진혁은 그녀가 자신에게 힘을 주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몇 번째예요?” “세어 보다가 포기했어요. 수수료 붙을까 봐.” 카렌은 작게 웃었다. 그때 중앙홀 바닥에서 가느다란 진동이 전해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표정을 바꿨다. 농담을 멈출 때와 시작할 때를 아는 것도 이제는 서로를 믿는 방식이었다. 점심이 지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루멘 심실에서 나온 낮은 진동이 공개홀 바닥에 전해졌다. 원형 작업대의 잔이 두 번 떨렸고 사람들은 동시에 발을 내려다봤다. 도르가 계측표를 들고 달려왔다. “심실 동쪽 압력관 수치가 올라갑니다. 백색 등대에서 보낸 회신은 멈춘 상태인데, 누군가 여기에서 응답 장치를 켰습니다.” 오렐이 임시 감정대를 돌아봤다. 그는 상자의 덮개가 조금 열린 것을 보았다. 반박을 준비하던 사이, 에르딘의 수행원 한 명이 뒷면 잠금 장치에 손을 댄 것이다. 수행원은 즉시 물러났지만 장치의 짧은 램프가 이미 켜져 있었다. “전원을 끄세요!” 세리아가 외쳤다. 오렐은 고개를 저었다. “외부 전원이 아닙니다. 심실 신호가 되돌아와서 동작해요.” 진혁의 손바닥에 문구가 연달아 떴다. [제0호 임시 감정대 활성화.] [수신 대상의 신원 대기.] [동기화 요청: 루멘 제2심실.] [주의: 대리 응답이 기록되면 비상 방벽 제어권 이관 가능.] 그는 머릿속으로 급히 계산했다. 누군가 자신을 접수기에 묶으려던 목적이 단순히 경매 장부를 조작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도시를 지키는 안전 설비의 작동 권한까지 한 사람의 이름에 묶어 넘기려 한 것이다. “모두 뒷문으로 이동해 주세요!” 진혁이 외쳤다. “앞쪽 대기 줄부터 천천히요. 뛰면 넘어집니다!” 카렌과 벨라가 관객을 움직이게 하고, 라일은 출입구 주변을 지켰다. 세리아는 도르와 오렐에게 심실의 차단 밸브를 확인하도록 했다. 하서린은 사용 중인 장치와 함께 심사 자료의 원본을 안전 보관함으로 옮겼다. 진혁은 비상용 봉인지가 붙은 원래 기록함을 바라봤다. 만약 지금 누군가 자신을 장치에 대고 강제로 서명시키면 세상은 여전히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뜻을 묻지 않고도 확인했다는 기록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계속 마주해 왔다. 사람의 이름, 과거의 기억, 돌아올 길, 거절할 수 있는 권리. 값은 매길 수 없어도 지켜야 할 이유는 있었다. “도르 씨, 정비실의 철문은 닫혔습니까?” “예. 다만 안쪽 압력이 조금씩 오릅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을 증명하는 일과 사람을 지키는 일 중 어느 쪽을 먼저 할지, 지금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모라가 나타났다. 언제나 유리 안쪽에서 움직이던 그 존재의 희미한 그림자가 중앙홀 바닥에 떠올랐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전에 모라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진혁은 멈칫했다. 모라의 의사가 전부를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로의 목적이 거절을 승낙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당사자의 직접적인 거절이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모라, 네 말을 기록해도 될까?” 그가 물었다. “응. 내 말로.” 해린은 별도 기록 장치를 켰다. 모라는 천천히 말했다. “누가 나를 대신 팔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 내 이름으로 문을 잠그지 마.” 임시 감정대는 그 말을 듣자 오히려 ‘확인 완료’ 표시를 띄웠다. 에르딘의 얼굴에 잠깐 승리의 표정이 스쳤다. 하지만 오렐이 독립 기록기의 파형을 객석에 보여 주었다. 종이 두 장이 나란히 놓였다. 한쪽에는 명백한 거절, 다른 한쪽에는 승낙을 뜻하는 표시. 두 기록이 서로 모순됐다. 진혁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장치의 기록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심사 중지하고 비상 방벽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순간 심실 쪽에서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바닥의 환기구 사이로 차가운 바람과 함께 소금물 몇 방울이 솟아올랐다. 루멘이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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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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