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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27화
PAYLUA ORIGINAL · 제127화

127화. 경매에서 사지 않은 창고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141자

오프라인 책장
백우운송의 남쪽 보관 창고는 낮은 담장 안에 세워진 기다란 건물이었다. 붉은 벽돌 외벽에는 수차례 덧칠한 흰 선이 남았고, 지붕에서 떨어진 눈이 양쪽 배수로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문 앞에는 화물용 계근대가 있었으며, 문 안쪽에서는 부피가 큰 기계 상자들이 천장에 닿을 듯 쌓여 있었다. 운송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창고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짐을 맡기고 찾는 시간이 생계와 직결되는 장소였고, 소유권을 잘못 처리하면 여러 상인의 거래가 한꺼번에 꼬이는 공간이었다. 진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문 앞에서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남관역의 공용 반송 터널이 창고 밑을 지난다는 도면만으로 사유 임차 공간에 출입할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도면을 가져왔고, 시설 안전 점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소담이 말했다. “문제는 회사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예요.” 세리아는 창고 벽의 큰 공고를 가리켰다. ‘남쪽 제7창고: 계약 만료에 따른 보관 권리 공개 입찰.’ 운송회사가 사용하던 창고의 일부 구역을 임대 재입찰에 내놓는다는 내용이었다. “저걸로 들어가면 어떨까요?” 진혁이 물었다. 카렌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임차권을 산다고 다른 사람의 짐을 조사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에요.” “그건 알아요. 다만 입찰 전에 시설 점검을 할 수 있잖아요. 임차인이 숨겨진 배수로를 모르고 계약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세리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제법 경매장 직원다운 생각이네.” 사전 점검을 신청하러 간 길에 일행은 창고 사용료를 납부하는 상인들을 만났다. 한 노점 상인은 겨울마다 곡물 자루가 젖어 값이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다른 운송인은 백우운송이 임대료를 올리지만 적재 구역을 깨끗이 치우는 비용은 모두 이용자에게 떠넘긴다고 불평했다. 반대로 한 목재업자는 회사가 폭설 때 길을 열어 줘 굶주릴 뻔한 가족을 살렸다고 주장했다. 진혁은 같은 회사를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느꼈다. 계약이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하나의 이름 아래 묶어 놓기도 했다. 그는 현장 비용을 따로 적었다. 창고 바닥을 수리하려면 목재와 철제 받침, 방수 공사가 필요했다. 예상 비용을 금화로 환산하자 임대료보다 보수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망가진 창고를 싸게 낙찰받는 일이 언제나 이익은 아니었다. 그 차이를 계산하지 못한 채 물건의 숨겨진 가치만 믿고 입찰하면 시장 전체가 자신을 속이는 함정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라일은 장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우리한테 이런 돈이 있습니까?” “없죠. 그래서 낙찰받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그런데 입찰을 왜 갑니까?” “물건을 사기 전에 상태를 살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확인한 뒤 안 사는 것도 감정사의 선택입니다.” 라일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도둑으로 불리며 값나가는 물건을 먼저 노리던 그에게 ‘안 사는 선택’은 뜻밖에 어려운 기술이었다. 공개 입찰은 다음 날 오전 역 앞의 소규모 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입찰 희망자는 사전에 창고를 방문해 벽과 바닥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혁은 무리하게 계약을 따낼 생각은 없었다. 입찰 대상은 제7창고의 빈 구역으로, 그 안에 다른 사람의 짐이 있는지와 건물 상태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는 세리아와 함께 회사에 사전 점검을 신청했다. 도건익은 신청서를 받아 들고 뜻밖이라는 얼굴을 했다. “돈이 떨어졌다면서 창고를 빌리겠다고요?” “돈을 벌려면 작업장이 필요할 수도 있죠.” 진혁이 대답했다. “시설 결함이 있으면 입찰에서 빠질 겁니다.” “창고 아래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임차권은 땅 밑의 소유권까지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 점은 계약서에서 확인하겠습니다.” 도건익은 잠시 진혁을 노려보다 사전 점검을 허락했다. 그에게도 입찰이 무산되면 손해였다. 오랜 침수 때문에 임대료가 내려가자 본사는 일부 구역을 재계약해 수입을 늘리려 했다. 낮은 곳에 있는 창고가 겨울마다 젖는다는 사실은 입찰자들에게 숨길 수 없었다. 제7창고는 사용 중인 다른 구역과 두꺼운 칸막이로 분리돼 있었다. 안에는 부서진 팔레트와 빈 철제 선반만 있었다. 바닥 일부는 최근 교체한 널빤지였고, 벽 아래에는 누군가 급하게 메운 듯한 회색 몰탈이 남아 있었다. 장재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작은 도구를 꺼냈다. “여길 왜 새로 고쳤죠?” 회사 직원이 답했다. “침수됐으니까요.” “바닥에는 물이 차올랐다면서 몰탈은 위에서 아래로 발랐군요. 누가 보수 작업을 했습니까?” 직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진혁은 시험 삼아 손바닥을 바닥 위에 얹었다. 가느다란 글씨가 떠올랐다. [대상: 제7창고 하부 바닥.] [원래 구조: 비상 반송 수로.] [보수 상태: 상부 가림판 설치.] [보관 품목: 불확정.] [주의: 빈 공간 하부 지지대 부식.] 그는 즉시 손을 뗐다.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보다 구조가 위험하다는 사실이 먼저였다. 소담은 안전 점검 요청을 역장에게 전달했다. 도건익은 시설 결함까지 지적받자 난처해졌다. “기록을 확인하겠다며 들어오더니 이제 내 회사의 건물까지 부수겠다는 건가요?” “부수자는 게 아닙니다. 안전 진단을 하자는 거예요.” 진혁이 말했다. “누가 낙찰받든 무너지는 바닥 위에서 일할 순 없잖아요.” 점검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진혁의 옷자락에는 회색 석회 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는 한참 손바닥을 털다가 새로 발견한 빈 공간을 생각했다. 정말 서류가 그 안에 있을까. 그의 능력이 알려 준 것은 비어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지, 어떤 사람이 그곳에 무엇을 두었는지에 대한 해답은 아니었다. “서진혁 씨.” 카렌이 그를 불렀다. “오늘 물건을 산 게 아니라 건물을 살폈잖아요. 그런데 표정은 경매에 실패한 사람 같아요.” “비밀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서요.” “급하게 확인하면 그 비밀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제 아버지가 남긴 검을 처음 잡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열쇠라고 생각해서 계속 돌렸더니 오히려 봉인이 잠겼죠.” 진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다면 전 이제부터 모든 열쇠를 조심해야겠네요.” 카렌의 표정도 풀렸다. 두 사람은 창고를 바라보았다. 담 너머로 화물차가 지나갔고, 누군가 쌓아 둔 빈 통을 정리하고 있었다. 비밀을 쫓는 사람들에게도 평범한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날 저녁 입찰 조건이 수정됐다. 제7창고는 안전 점검을 마칠 때까지 즉시 사용이 불가능하며, 계약자는 보수 비용을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입찰 희망자 절반은 명단에서 빠졌다. 도건익은 진혁을 불러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되면 회사의 수익이 줄어듭니다. 무책임하게 흔들어 놓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조건을 숨긴 채 팔았다면 나중에 더 큰 손실이 났을 겁니다.” 도건익은 반박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찾는 게 사람의 이름이라면, 왜 자꾸 철판과 바닥을 만집니까?” 진혁은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그에게는 사람의 이름을 바로 알려 주는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물건은 거짓으로 적힌 계약이 지나간 자리를 남겼다. “이름을 지운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까요. 남겨진 흔적부터 확인하는 겁니다.” 다음 날 입찰 회관에는 작은 상인 다섯 명과 창고 운영업자 두 명이 모였다. 서기가 계약 범위를 읽고 보수 조건을 설명했다. 첫 입찰가는 금화 두 닢의 월 임대료였다. 진혁은 손을 들지 않았다. 다른 상인이 금화 세 닢을 불렀고, 낡은 가구상 한 사람이 금화 넷을 제시했다. 낡은 가구상을 운영하는 여성은 고향에서 마레온으로 책상을 보내기 위해 창고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세리아가 그를 보았다. “정말 계약할 생각 없었나?” “필요하면 하려고 했죠. 그런데 저분이 더 필요해 보이네요. 그리고 우린 아래쪽 점검을 요청할 방법을 찾았잖아요.” 입찰 중 진혁은 가구상에게 작은 메모를 건넸다. 거기에는 바닥 검사 시 확인한 균열 위치와 예상 보수 항목이 적혀 있었다. 대단한 비밀은 아니었다. 사전 점검을 한 참가자라면 누구든 볼 수 있는 정보였다. 가구상은 메모를 읽고 망설이다가 추가 비용 조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진행자는 잠시 입찰을 멈춰 모든 참가자에게 동일한 설명을 다시 했다. 누군가 모르는 사이 큰 비용을 떠안는 경매는 정상적인 거래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가구상의 이름은 류미선이었다. 그녀는 병든 남편 대신 작은 수리 가구점을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몇 년째 마레온으로 책상을 보내는 일을 늘리고 싶었지만 중간 창고가 비싸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금화 넷을 부른 뒤 그녀는 기뻐하면서도 최종 낙찰 여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런 낡은 창고가 내 가게를 살릴지, 더 큰 빚을 만들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진혁이 답했다. “계약이 끝나면 확인할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모르는 하자를 숨긴 채 계약하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미선은 웃었다. “젊은 사람이 생각보다 신중하네요. 나는 당신이 꼭 낙찰받으려는 줄 알았어요.”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주머니가 반대하더라고요.” 라일은 옆에서 작게 기침하며 웃음을 참았다. 낙찰은 가구상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계약서의 보수 조항을 확인한 뒤 서명했다. 진혁은 괜히 뿌듯했다. 사기성 권리나 위험한 건물을 사들이지 않아도 경매의 결과가 괜찮게 끝날 수 있었다. 입찰 명세서를 접던 세리아는 계약서의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제7창고의 소유자는 회사가 아니라 남관역 관할 공공 부지 관리청이었다. 백우운송은 건물 사용권을 임대하고 있었을 뿐, 지하 수로의 폐쇄 권한까지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이 점은 앞으로 누가 안전 점검을 승인할지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세리아는 계약 문구를 수첩에 적고 류미선에게도 알려 주었다. 바깥 광장에서는 평소처럼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동네 아이들은 창고 경매가 끝난 줄 알고 남은 간식을 얻으러 왔고, 식당 주인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콩차를 나눠 주었다. 진혁은 잠시 그 평범한 장면을 바라봤다. 창고 바닥 밑에 숨은 일이 무엇이든, 그 사실 때문에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잃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관 밖에서 소담의 전보 직원이 뛰어왔다. “역장님이 찾으십니다! 창고 바닥이 꺼지고 있어요!” 진혁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렸다. 경매의 망치가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방금 입찰에서 낙찰된 건물 아래에서, 열두 해 전 반송 기록을 숨긴 공간이 결국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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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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