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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화
PAYLUA ORIGINAL · 제1화

1화. 집주인이 드래곤이면 보증금은 누가 돌려주나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382자

오프라인 책장
김태오가 이세계에서 처음 배운 생활 상식은 세 가지였다. 첫째, 밤에 숲에서 빛나는 버섯은 먹으면 안 된다. 둘째, 길모퉁이의 작은 요정에게 소원을 빌면 대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셋째, 집을 구할 때는 계약서부터 읽어야 한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했다. 첫 번째는 배탈로 끝날 수도 있고, 두 번째는 운이 나쁘면 머리카락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정도였지만, 세 번째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잡아먹었다. “금화 삼백 닢입니다.” 엘프 중개인 리네아가 환하게 웃었다. 태오는 손가락을 세어 보았다. 한 번 세고, 다시 세었다. 금화 삼백 닢. 틀림없었다. 한국에서 살 때도 그랬지만, 숫자를 여러 번 확인한다고 줄어들지는 않았다. “월세가요?” “아뇨. 보증금이요.” “보증금이 삼백이라고요?” “계약 기간 동안 집주인이 안전하게 보관합니다. 퇴거할 때 돌려드리고요.” 그게 보증금의 뜻이라는 건 태오도 알았다. 문제는 돌려받을 수 있느냐였다. 낯선 세계에 떨어진 지 넉 달째. 태오는 길거리 짐꾼으로 시작해 엘프 상단의 창고 관리와 시장 짐 운반을 도맡았다. 말은 통했다. 이세계에 오자마자 언어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점만은 하늘에 감사했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는 것과 사람들이 정직한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집주인 이름이 발카스?” “네. 오래된 가문의 자산가예요. 이 도시에서 그분보다 부유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걸요.” “그렇게 부자인데 왜 직접 집을 안 보여 줍니까?” “바쁘시거든요.”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리네아는 손에 든 서류를 아주 잠깐 내려다봤다. “자산 관리요.” 자산가가 자산 관리를 한다. 참으로 완벽한 직업 설명이었다. 태오는 계약서를 앞으로 당겼다. 파벨시 동문 근처의 작은 이층집. 시장까지 도보 십오 분. 아래층에는 부엌과 작업실, 위층에는 침실. 겨울에는 벽난로를 피울 수 있고, 지붕은 비가 새지 않는다고 했다. 집 없는 이방인에게는 호화로운 조건이었다. “기간은요?” “이 년입니다.” “중도 해지는?” “대체 세입자를 구하면 가능해요.” “보증금 반환은?” “퇴거 확인 뒤 일주일 이내.” 태오는 해당 문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글씨가 은색으로 빛났다. 이 세계의 계약서에는 마법 인장이 찍혔다. 서명하면 문서의 원본 내용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좋은 제도 아닌가. 적어도 한국에서 겪었던 ‘그때는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라는 악몽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벽이 무너지면 누구 책임입니까?” “자연적인 노후는 집주인 부담입니다.” “그럼 제가 세입자니까 고장 난 수도꼭지는?” “고의로 부수지 않았다면 역시 집주인 부담이죠.” “집주인이 돈 없다고 보증금 반환을 미루면요?” 리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발카스 님이요? 그분이 돈이 없을 리가요.” 그 웃음이 문제였다. 너무 자신 있었다. 태오는 계약서를 덮었다. “집을 먼저 볼게요.” “물론이죠!” 집은 사진보다 더 좋았다. 아니, 사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리네아가 마법 수정구에 띄운 환영은 실제보다 훨씬 화려했는데, 다행히 현실도 나쁘지 않았다. 창틀이 멀쩡했고, 바닥에는 곰팡이 냄새가 없었다. 무엇보다 문을 닫으면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태오가 이 세계에서 가장 그리워한 것은 인터넷도, 전자레인지도 아니었다. 혼자 문을 잠그고 누울 수 있는 방이었다. 그가 원래 살던 서울의 반지하 방에는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자주 들렸다. 월세가 싼 데는 이유가 있었고, 이곳 파벨의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열 명이 자는 여관 공동방에서 한 달을 지낸 뒤에는 발이 닿는 이층집이 궁전처럼 보였다. “난방은 어떻게 하나요?” “벽난로에 불꽃 수정이 연결되어 있어요.” 리네아가 벽의 작은 구슬을 눌렀다. 벽난로에서 푸른 불이 피어났다. “수정 충전비는 관리비에 포함?” “네.” “쥐는?” “없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벽 뒤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렸다. 두 사람은 동시에 벽을 바라봤다. 리네아가 기침했다. “쥐가 아니라 집정령일 거예요.” “집정령은 보증금을 깎아 줍니까?” “그건 아니죠.” “그럼 그냥 쥐라고 하시죠.” 리네아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날 태오는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모은 돈은 금화 백스물여덟 닢뿐이었다. 나머지를 채울 때까지 일을 더 해야 했다. 작은 주택을 매입하는 것보다 임대 보증금을 모으는 편이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이세계에서도 집은 비쌌다. 그로부터 여덟 달 뒤, 태오는 남은 금화를 마련했다. 시장의 창고장이 좋은 거래를 소개해 준 덕이었다. 지붕 재료를 실은 마차가 빗길에 뒤집혔고, 태오는 떨어진 자재를 정리해 손실을 줄여 줬다. 창고장은 보너스로 금화를 내놓았다. “그만큼 벌어서 뭐 하려고?” “집 구하려고요.” “이방인이 집을?” “집이 있어야 오래 일하죠.” 창고장은 한참 태오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사람은 잠자리 걱정이 없어야 내일 일을 하지.” 태오는 그날 처음으로 이 세계에서 마음이 놓였다. 도시의 말투와 시장의 흥정 방식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여관 주인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빵집에서는 전날 남은 빵을 할인받을 수 있었다. 파벨시가 아주 좋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태오가 발붙일 자리는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계약 날이 왔다. 리네아의 사무실에는 낡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산 정상에 앉은 검은 용이 황금 더미를 감싼 그림이었다. 태오는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멋진 그림이네요. 집주인 취향입니까?” “아…… 네. 가문의 상징이에요.” “용이요?” “그쪽 계통이 좀, 그렇죠.” 리네아는 괜히 서류를 정리했다. 태오는 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세계에선 용 그림이 한국의 대기업 로고처럼 쓰이는 모양이었다. 계약서에는 금화 삼백 닢을 받았다는 문장, 임대 기간 이 년, 퇴거일 이후 일곱 날 안에 보증금을 돌려준다는 조항이 또렷하게 들어갔다. 태오는 빈칸에 한 번 더 줄을 긋고 인장을 확인했다. 금화 주머니를 리네아 앞에 내려놓자 서기가 저울로 무게를 재고 하나씩 숫자를 불렀다. “삼백. 이상 없습니다.” 리네아가 손을 내밀었다. “파벨에 오신 걸 환영해요, 태오 씨.” 태오는 그 손을 잡았다. 이사 첫날 밤, 그는 창가에 앉아 작은 빵을 먹었다. 벽난로는 따뜻했고, 침대 시트에서는 햇빛 냄새가 났다. 똑같은 골목인데도 내 집 안에서 바라보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 물론 정확하게는 내 집이 아니었다. 돈을 맡기고 잠시 빌려 쓰는 집. 그래도 좋았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 집 열쇠를 건네받은 날, 태오는 시장에서 작은 빗자루와 못 한 봉지를 샀다. 리네아는 집주인이 제공한 가구를 그대로 쓰면 된다고 했지만, 태오는 마룻바닥을 직접 닦아 보고 싶었다. 계약서는 남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도 손이 닿는 공간은 조금씩 자기 것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는 부엌 창틀에서 검은 먼지를 발견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가루가 묻었다. 벽난로 연기인 줄 알고 닦았지만 다음 날 다시 나타났다. 리네아에게 물어보니 산맥에서 날리는 화산재일 거라고 했다. “발카스 님 영지에서는 흔해요.” “그분 영지가 여기까지입니까?” “파벨의 동문 일대는 옛날부터 그 가문의 땅이었어요.” “그럼 도시는 땅세도 받습니까?” “왕국에 납부하는 세금은 따로 있어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지 소유와 세금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건 어느 나라나 같았다. 집 한 채를 얻었다고 세상의 제도를 다 알 수는 없었다. 처음 며칠은 벽난로를 켤 때마다 어린애처럼 감탄했다. 작은 구슬 하나로 방이 따뜻해지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밤중이면 계단 아래서 낮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가끔은 먼 곳에서 종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오래된 집은 원래 그래요.” 이웃집에 사는 아저씨가 말했다. “나무가 숨을 쉬거든.” “나무가 너무 크게 숨 쉬는 것 같은데요.” “그럼 익숙해질 때까지 귀마개를 쓰게.” 태오는 웃고 말았다. 파벨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와 함께 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이 오자 그는 정원 한구석에 작은 화분을 놓았다. 이세계 이름으로 ‘미아풀’이라는 허브였다. 잘 자라면 빵에 넣어 먹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잎이 나왔을 때 태오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여관 주인에게도 자랑했다. “집이란 게 이런 거구나.” 그가 중얼거리자 주인은 피식 웃었다. “집은 자랑할 게 아니라 고칠 데가 없는 게 최고야.” 맞는 말이었다. 며칠 뒤 계단 세 번째 판자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태오는 손수 못을 박으려다가 멈췄다. 계약서를 꺼내 수리 책임을 확인했고, 중개인에게 연락했다. “집주인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사흘 뒤 리네아의 답이 왔다. “발카스 님은 긴급한 수리가 아니면 다음 점검 때 처리하신대요.” “다음 점검이 언제인데요?” “그건 아직…….” 태오는 결국 자기 돈으로 작은 보강재를 샀다. 영수증에는 날짜와 품목을 적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다. 한국에서 세입자로 살면서 몸에 밴 습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제 그 종이들이 자신을 지켜 줄 증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터였다. 첫해 겨울, 파벨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상단 창고의 야간 배송을 맡은 날에는 새벽까지 일을 하고 돌아왔다. 문을 열면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그는 손을 녹이며 ‘이 집만큼은 지키자’고 생각했다. 어디서 어떻게 이 세계로 오게 됐는지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일 잠잘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그 확실함을 위해 금화 삼백 닢을 맡겼다. 그때만 해도 보증금이란 계약이 끝나면 당연히 돌아오는 돈이라고 믿었다. *** 이 년 뒤. 파벨시 동문 골목의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정원의 잡초는 태오가 정리했고, 흔들리던 계단은 그가 직접 고쳤다. 비 오는 날마다 덜컥거리던 창문도 수리했다. 이런 일은 손재주만으로 되지 않았다. 거주자가 매일 집의 작은 소리를 듣고 살펴야 가능한 일이었다. 태오는 새로운 작업장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짐꾼으로 시작한 외지인이 이제 상단의 물류 계약까지 맡았다. 한국에서 배운 재고 관리와 흥정 솜씨 덕분이었다. 계약이 끝나면 더 넓은 동네로 옮길 생각도 있었다. 드워프 장인들의 거리 가까이 작은 가게를 구하면 배송 일감도 늘릴 수 있을 터였다. 그날 그는 집주인에게 보낼 계약 만료 안내서를 완성했다. [계약 만료일에 퇴거 예정. 보증금 금화 삼백 닢 반환 요청. 점검 희망일 사흘 뒤.] 전달 확인 마법이 켜졌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없었다. 두 시간 뒤에도. 다음 날 아침에도. 태오는 리네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발카스 씨에게 연락이 안 돼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리네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전달석을 세 번 두드리고, 봉인 문서함을 열었다가 닫았다. 태오는 그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중개인이 이미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게…… 이번 주에 집주인 쪽에서 지급 일정이 조금…….” “조금?” “조정될 수 있다고 해서요.” 태오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 문장은 어느 세계에서든 똑같은 뜻이었다. 돈이 없다는 뜻. “발카스 씨 엄청난 부자라면서요?” “맞아요. 재산은 많으세요.” “그런데 현금이 없습니까?” 리네아가 대답하지 않았다. 태오는 천천히 계약서를 꺼냈다. 은빛 인장이 여전히 반짝였다. “집주인 만나야겠습니다.” “지금은 조금 어려운데요.” “어디 있죠?” 리네아가 창밖의 먼 산을 가리켰다. “저기, 검은 산맥에 계세요.” “별장입니까?” “음…… 일종의 거처죠.” 태오는 숨을 들이켰다. “정확히 어떤 분인데요, 발카스 씨가?” 잠깐의 침묵 끝에 리네아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드래곤이세요.” “……뭐요?” “아주 오래된 고대 드래곤이요.” 태오는 계약서의 소유주 항목을 다시 확인했다. [발카스. 검은 산맥의 지배자. 고대 종족 등록 제1호.] 처음에는 이름 뒤에 붙은 화려한 작위쯤으로 생각했던 문구였다. “이런 건 계약 전에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리네아가 난처하게 웃었다. “거짓말은 안 했어요. 가문의 상징이 용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가문이 아니라 본인이잖아요!” 그날 태오는 이세계에서 네 번째 생활 상식을 배웠다. 집주인이 부자라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이 끝났을 때 돈을 돌려줄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돈을 안 돌려주는 집주인이 드래곤이라고 해서, 돈을 포기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태오는 계약서를 접었다. “좋습니다. 직접 받으러 가죠.” 리네아가 눈을 크게 떴다. “검은 산맥에요?” “네.” “거기 가면 잡아먹힐 수도 있어요!” “전세금 삼백 닢 못 받으면 저도 굶어 죽습니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는 만나 보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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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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