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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200화
PAYLUA ORIGINAL · 제200화

200화. 노무사의 마지막 출근

용사 파티에 노무사가 입사했다 · 6,454자

오프라인 책장
그해 겨울은 길었다. 왕도의 겨울은 서울보다 조용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마차의 바퀴 소리가 줄었고, 사람들은 집 앞의 길을 천천히 쓸었다. 수현은 오래전에 빌려 입던 외투를 수선해 계속 사용했다. 처음에는 여기에 오래 살게 될까 봐 새 옷을 사는 것도 망설였지만, 겨울 바람이 그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옷을 잘 고른다며 칭찬했고 수현은 가격표를 보고 산 옷이라고 말했다.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그동안 수현은 하루에 한 번 이상 기술청으로 가지 않았다. 연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도를 지킨다고 안전 검증이 빨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대신 여관에서 책을 읽고 메이와 산책하고 가끔 제7원정대의 근무 관련 질문을 들었다. 정식 자문 계약은 끝난 상태였으므로 새로운 유급 업무를 부탁받으면 별도로 판단했다. 자신의 귀환이 누군가의 무급 노동 위에 세워지지 않게 하려고 했다. 첫눈이 왔을 때 수현은 검토실에서 원점 시계의 보정값을 확인하고 있었고, 두 번째 눈이 왔을 때는 왕국 기술자들이 신호용 유리편을 되돌리는 시험을 독립적으로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실험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몇 차례 부정적인 결과도 나왔다. 어떤 유리편은 왕복 후 표식의 모서리가 달라져 동일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시험은 성공 목록에서 제외됐다. 다른 물품은 도착지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아 출발 전부터 중단됐다. 보고서에는 그런 실패도 숨기지 않고 실렸다. 수현은 시험 건수보다 중단과 실패가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먼저 읽었다. 실험실에서는 실패를 인정해도 누구도 무능하다고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결과 덕분에 장치를 고칠 방향이 생겼다. 수현이 가장 안심한 날은 기술청이 예정된 시험 한 번을 취소했을 때였다. 담당 안전관리자가 피로를 호소했고 대신 일할 사람이 없었다. 연구비를 지원하는 귀족의 대리인이 일정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루세는 거절했다. 수현은 그 광경을 보고 미소 지었다. 자신의 귀환을 위한 길이 한 사람의 무리한 근무로 유지된다면, 그런 길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번 제출되는 결과를 읽고 자신이 아직 동의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루세는 오랜만에 활짝 웃는 얼굴로 찾아왔다. 두 지역의 독립 검사관들이 문자와 작은 무생물 시험물의 왕복 결과를 일치시켰다는 보고였다. 출발한 곳으로 돌아온 물품의 표식이 실물 보존 기록과 일치했고, 시간 보정값도 두 번의 별도 시험에서 재현됐다. 그것만으로 사람이 건널 수 있다는 증명은 아니었다. 그러나 낡은 문서에만 있던 ‘반환’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실제 물품의 움직임과 연결된 날이었다. 수현은 곧바로 출발 날짜를 묻지 않았다. “안전 심사는 어떻게 됐어요?” “생체 물질의 구조 보존 검사는 독립적으로 진행됐고, 의료진이 회복 가능성 기준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살아 있는 사람의 이동에는 확인하지 못한 위험이 있습니다.” “그럼 아직 제 차례가 아니네요.” “네. 원하신다면 앞으로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을 믿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완료'라는 도장이 찍히기를 기다리며 침묵하지 않았다. 알고 싶은 것을 물을 수 있었고, 원하지 않는 것을 거절할 수 있었다. 봄이 가까워졌을 때, 두 세계의 짧은 공개 회신 창구가 안전하게 운영되기 시작했다. 한국 쪽에서는 처음 질문에 답했던 사람이 자발적으로 협조해 연결을 확인했다. 뒤이어 독립된 연락 담당자가 통신을 대조했다. 왕국 쪽에서는 개인 주소와 신원을 요구하지 않고 수현이 원할 때만 일부 정보를 교환하도록 규칙을 만들었다. 시간 기준도 서로 다른 값을 한 장에 적지 않고 송신·수신·교정 시각으로 나누어 보존했다. 수현은 마침내 본인의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공개 회선이 아니라 보호된 확인 창구에서였다. 한국 쪽 연락 담당은 그녀가 살던 세계의 여러 사실을 차례로 확인했고, 수현도 상대가 제공한 정보가 이전 왕국 문서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이쪽의 마법과 저쪽의 통신망을 같다고 가정하지도 않았다. 양측이 납득할 수 있는 질문과 대답만 쌓았다. 이동 안전 검토는 더 오래 걸렸다. 살아 있는 사람을 최초 시험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기술진은 무생물의 여러 크기와 재료, 생체 조직의 비활성 시료에 대한 단계적 보존 시험을 진행했다. 응급 중단과 역방향 차단의 독립 검사를 마친 뒤에도 안전팀은 남은 불확실성을 문서에 적었다. 수현은 그 보고서를 모두 읽었다. 숫자가 높다고 해서 위험이 없어진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사람의 이동을 선택할 날이 왔다고 알렸을 때에도, 왕국은 출발을 의무로 정하지 않았다. 독립 의료진과 기술진은 확인된 안전 근거와 남은 위험을 분리해 설명했다. 한국 쪽에는 도착 확인과 의료 지원을 담당할 사람이 준비됐고, 출발 전까지 어떤 단계에서든 중단할 수 있었다. 수현은 여러 날에 걸쳐 질문했고, 누구도 그녀의 질문 횟수를 탓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인가요?” 마지막 회의에서 수현이 물었다. 루세가 말했다. “모든 위험을 없앴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계획된 통로와 중단 조건, 도착 후 확인 절차를 양쪽에서 독립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저희가 감출 수 있는 정보는 이제 없습니다. 결정은 당신의 것입니다.” 수현은 오래 침묵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자신은 선택할 수 없었다. 누군가 만든 서식이 그녀의 삶을 옮겨 놓았다. 지금은 수많은 서류가 그녀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자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돌아가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기술자는 마지막 점검 날짜를 적었고 의료진은 출발 전 건강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모두가 조용했다. 수현은 그 침묵이 좋았다. 누군가의 결정을 다른 사람의 축하로 덮어 버리지 않는 침묵이었다. 제7원정대의 송별회는 작은 식당에서 열렸다. 메이는 고리 없는 손목에 자신이 고른 끈을 묶고 있었다. 카이렌은 휴가 중이라 평상복을 입었고, 젠과 데런은 누가 더 큰 케이크를 가져올지를 두고 다퉜다. 라비엔은 북방에서 직접 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새 계약서와 함께 짧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여기서 계속 살아갈 겁니다. 당신은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세요.’ 오르카가 편지를 읽고 먼저 코를 훌쩍였다. 데런이 그를 놀렸지만 곧 자기 눈도 붉어졌다. “그렇게 울 거면 다른 사람이 휴가 대신 일할 때는 잘 쉬어 주세요.” 수현이 말했다. 카이렌이 잔을 내려놓았다. “수현, 나는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우리가 필요하면 무엇이든 해 줄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제일 먼저 한 말은 우리가 멈춰도 된다는 거였죠.” “용사 파티의 첫 번째 임무가 퇴근시키는 거였으니까요.” 메이가 웃었다. “이제 우리가 해요. 당신이 없어도.” 수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다. 떠난 뒤에도 누군가 자신의 빈자리를 억지로 메우느라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자신 없이도 쉬고 선택할 수 있다면, 그녀가 여기 있었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출발 전날 수현은 여관의 방을 정리했다. 여관 주인은 계약서대로 숙박비를 출발일까지 계산했다. 처음부터 약속했던 방식이었다. 주인은 동전 한 닢을 돌려주며 말했다. “선불로 받은 난방비가 남았습니다.” “여기까지 와서도 정산이 정확하시네요.” “손님이 너무 까다로우셔서요.” 수현은 웃으며 남은 동전을 받았다. 아주 오랜만에 짐을 쌌다. 왕도에서 산 장갑, 메이가 준 차, 카이렌이 사 준 말린 과일, 라비엔의 편지, 낡은 휴대전화. 통로 안전 규정 때문에 가져갈 수 없는 물건은 따로 보관했다. 그녀는 편지의 원본 대신 허가된 사본 일부를 챙겼다. 그리운 것과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달랐지만 기억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출발하는 날 아침, 검토실에는 예전의 거대한 마법 문 대신 안정적으로 고정된 작은 통로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수현은 출발할 때 무엇이 가장 무서울지 오래 생각해 왔다. 빛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일 줄 알았지만 막상 당일이 되자 더 무서운 것은 친구들의 얼굴을 오래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떠나기 전 메이와 카이렌에게 각각 짧은 메모를 건넸다. 메이에게는 '남의 병도 돌보되 자기 밥부터 먹기'라고 적었고 카이렌에게는 '용사도 휴가 신청서에 사유를 길게 쓸 필요 없음'이라고 적었다. 두 사람은 내용이 너무 짧다고 항의했다. “이게 다예요?” 카이렌이 물었다. “긴 설명은 이미 충분히 했잖아요.” 메이는 메모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다음에 만나면 제가 잔소리할게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라는 말이 이렇게 따뜻할 줄은 몰랐다. 두 세계 사이에 통신 창구가 생겼으니 아주 먼 미래에는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확실히 아는 것은 이 사람들이 여기서 자기 삶을 이어 간다는 사실뿐이었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담당자들은 먼저 출발과 도착 확인 시각을 대조했다. 안전관리자는 절차를 다시 설명했고, 한국 쪽 응답 담당자는 보호 회선으로 수신 준비가 끝났다고 알렸다. 수현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 확인하겠습니다.” 나엘이 말했다. “지금도 중단할 수 있습니다.” “알아요.” “돌아갈 곳과 목적을 본인이 선택하셨습니까?” 수현은 메이를 보았다. 카이렌과 세드나, 루세도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억지로 이곳에 데려왔던 그날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네. 제가 선택했습니다.” 장치는 화려하게 폭발하지 않았다. 빛은 오히려 물결처럼 낮게 흔들렸다. 루세가 기록판을 확인하고 수현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출발하시겠습니까?” “네.” 수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가 다른 세계에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어디에 발을 놓는지 알고 있었다. 눈앞의 빛이 잠깐 흐려졌다. 차가운 공기와 익숙한 전자 기기 소리가 동시에 다가왔다. 바닥은 거칠고 단단했다. 누군가 한국어로 말했다. “이수현 씨 맞으십니까? 앉으셔도 됩니다. 의료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들었다. 벽에는 한글로 적힌 안내문이 있었고, 모니터에서는 서로 다른 두 시각을 대조하는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서울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사람이 도착했다는 확인은 왕국에서 ‘완료’를 찍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실제로 그녀를 본 사람이 확인하고 말을 걸어 주었다. “네.” 수현이 대답했다. “저 이수현입니다.” 검진과 신원 확인이 끝나자 작은 휴게실로 안내받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휴대전화를 꺼냈다. 담당자가 외부 기기를 연결해도 괜찮은지 물었고, 수현은 먼저 충전 규격과 자료 보호 방법을 확인했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이곳에 돌아와서도 질문부터 하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잠시 뒤 화면에 익숙한 불빛이 들어왔다. 날짜와 시간이 나타났다. 그녀가 떠나온 곳과 머물렀던 곳의 시간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 사실은 앞으로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화면이 켜졌다는 것만으로도 수현에게는 충분히 큰 순간이었다. 휴대전화에는 읽지 못했던 메시지들이 쌓여 있었다. 수현은 바로 답장하지 못했다. 손끝으로 화면을 훑다가 결국 짧은 문장을 적었다. ‘나 돌아왔어. 이야기할 게 정말 많아.’ 창밖에는 버스가 지나갔다. 커피를 들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어딘가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수현은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수백 장의 서류보다 단순한 하루였다. 조금 뒤 왕국 쪽에서 마지막 확인 문장이 도착했다. ‘도착자 본인 확인 완료. 귀환 기록은 양측 확인 후 종료.’ 그 아래에는 메이가 직접 적은 짧은 인사가 덧붙어 있었다. ‘오늘은 꼭 쉬세요.’ 수현은 창가에서 웃었다. “그래. 오늘은 쉬자.” 서랍 위에는 작은 수첩이 있었다. 첫 페이지에는 아직 지우지 않은 질문이 적혀 있었다. 누가 나를 데려왔는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누구의 동의가 필요한가. 그녀는 그 옆에 답을 한 줄씩 덧붙였다. 어떤 질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어떤 책임 조사는 왕국에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자기 삶의 결정만큼은 분명했다. 수현은 마지막 장을 넘겼다. 그리고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는다. 내가 결정한 휴일이다.’ 그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모르는 번호가 아니라 왕국과의 보호된 연락 창구에서 전해진 새 메시지였다. 메이의 이름 뒤에 짧은 질문이 적혀 있었다. ‘우리 쪽에도 상담할 사람이 생겼어요. 혹시 다음에는 서류 쓰는 법을 알려 줄 수 있나요?’ 수현은 웃으며 화면을 덮었다.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밖의 서울을 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두 세계를 잇는 길이 열렸다고 해서 모든 연락에 즉시 응답할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후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 ‘오늘은 휴무입니다. 내일 이야기해요.’ 그리고 아무도 그녀를 다시 소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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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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